하재영 / 시인
며칠 전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다.

3학년 사회과 교육자료로 가정에 있는 옛날 물건 있으면 가져오라 했는데 가져온 것이라곤 작은 옹기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떤 물건을 가져오라했는지 물었다.

“왜 옛날에 흔했잖아요. 호롱, 빨래판, 삼태기, 절구, 다듬잇돌, 화로, 맷돌, 가마솥, 떡살, 키 이런 것들 말이에요”

그 선생님이 근무하는 곳은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자리잡은 학교였다.

“그럼, 그런 것들이 다 어디 있는 것이죠?”

“다 없앤 거죠. 아파트란 공간이 그런 것들을 그냥 두게 하지 않잖아요. 결국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편집해설명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그날 난 내가 보관하고 있는 옛 물건에 대해 살펴보았다. 어머니께서 시집올 때 가져온 놋화로와 세수 대야는 아직까지 내가 보관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책이었다. 글을 공부한답시고 사들인 시집과 소설, 그리고 각종 잡지들이 아파트 구석구석에 먼지를 머리에 이고 꽂혀 있다. 전업 작가가 아닌 나로서는 책을 보관할 전문 작업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처자식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 그런 것들을 쌓아놓자니 공간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것을 어떻게 보관하느냐가 항상 문젯거리였다.

지역문단의 말석에 이름을 올리고 활동하면서 발표한 글들이 늘어나면서 그러한 고민은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이따금 낡은 책을 찾아 인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더불어 아날로그 세대로서 아직 책을 바라보고 만지고 넘기는 그 기분이 마냥 좋은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최근 `포항문학`이란 지역무크지를 `문학만(文學灣)`으로 제호를 바꿔 출간했다. 영일만의 고장에서 발간하는 문학지로서 그 위상을 높이기 위해 거듭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출발한 작업이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영일만`의 뿌리인 `포항문학`은 1981년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한흑구 특집으로 발간한 창간호는 서울 문단과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포항으로 향하게 하였다. 이후 해마다 시대가 안고 있는 묵직한 주제를 특집으로 한 권씩 발간하던 것을 2007년 27호 이후 년 2회 발간해 2010년 전반기 33호에 이르렀다. 한 지역에서 발간한 문학무크이면서도 한국의 여느 지역에서 나오는 잡지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내 자신도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1988년 8호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니 그 세월만 해도 23년 됐다. 더욱이 오랜 기간 편집위원으로서, 또 편집실무자로서 활동하며 나름대로 `포항문학`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없는 것은 헌책방을 옮겨다니며 보충하곤 했다.

그런데 꽂아 놓은 책들을 훑어보다가 `포항문학`창간호가 빠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 어느 책 사이 끼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오래 전 누가 빌려간 것인지 알 길 없었다.

그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포항문학` 창간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란 호기심이 생겼다.

`포항문학` 1세대에 해당하는 분들의 집에도 초기의 `포항문학`이 보관돼 있을지 궁금했다. 1세대에 해당하는 한흑구, 빈남수, 손춘익과 같은 분들은 이미 저 세상의 문학판에서 서로 술잔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느 집에선가 낡은 책 한 묶음을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폐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 포항문학 초기의 책들도 끼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낡아가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오늘날의 우리 풍토에 눈의 띄지 않는 `포항문학`창간호를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포항문학`이 `문학만`으로 새롭게 얼굴을 내민 이 때에 창간호 빠짐의 발견은 아무래도 3학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초기의 책들 그 자체가 찬란한 가치를 내게 부여하기 위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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