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첫 시집 `둥근소리의 힘`(삼우애드컴 펴냄)을 펴낸 이석현<사진> 시인은 30년 넘게 포스코에서 근무한 노동자 시인이다.

이 시인은 1999년 포항문예아카데미를 통해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작가정신`신인상으로 등단, 포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해설을 쓴 김명인 시인(고려대 교수)는 “그가 우려낸 시편들은 오래 담금질한 쇳덩이처럼 굳센 바가 있으니,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으로부터 삶의 비의를 포착해내는 눈썰미가 강인하고도 날카롭다” 그리고 “이렇게 빚어 낸 시는 다소 투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단단하고 편안한 서정의 힘을 느끼게 한다”고 했고, 시집에는 포스코에서 대장장이로 살아온 시인의 삶처럼 양질의 쇠를 만들기 위해 제선, 제강, 연주, 압연 공정을 거친, 오래 담금질한 흔적이 엿보이는 68편의 시편들이 쇠의 무게로 남아있다.

그가 우려낸 시편들은 오래 담금질한 쇳덩이처럼 굳센 바가 있으니,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으로부터 삶의 비의를 포착해내는 눈썰미가 강인하고도 날카롭다. 그리고 그것을 시에 담아내는 방식은 대장장이가 한 자루의 낫을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메질과 담금질을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빚어낸 시는 다소 투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단단하고 편안한 서정의 힘을 느끼게 한다.

그의 시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유년 시절의 체험에서부터 노동의 현장에서 느끼는 감회에 이르기까지, 경험의 서사가 진솔하게 고백된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시간 앞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다. 시인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 시와 마주선다. 그의 시에 시간과 바람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이다. 시간과 바람은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서만 가늠해볼 수 있는 대상들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의 흔적을 추적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이 시인의 시작활동(詩作活動)인 셈이다.

`바람을 만나다`는 박물관에서 손풀무체험을 하다가 느낀 감회를 노래하고 있다. 시의 화자는 “강한 바람을 집어넣어야/ 강한 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깨닫는다. 이는 “30년간 철공장에서” 근무하면서도 몰랐던 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원전 300년 고대철기문화를 관람하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은 단순한 앎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화자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지혜로 변용된다. 시에서의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식이 지혜로 전이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시의 화자가 깨달은 지혜는 “모든 것은 바람을 만나야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바람”은 `시련`과 `고난` 등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이 시에서의 “바람”은 박물관에서 겪은 화자의 체험으로 인해 긍정의 역량을 체득한 시어로 고쳐 쓰이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단련시켜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시인의 시간관은 `대구행 인생열차`에서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직행버스를 타면 돈은 더 들지만, 걸리는 시간은 완행열차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완행열차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82세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를 말동무 삼아 먼 길을 가니 오히려 심리적인 시간은 “고속전철 보다 몇 배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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