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체제 개편·정당공천 배제가 선결 과제

6·2지방선거를 치른 이후 정치권에서는 갖가지 정치개혁과제가 머리를 들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반에 충격을 받은 여당은 당·정·청 쇄신론에 휩싸여 있고, 민주당은 지방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을 화두로 삼아 여당과 정부의 실정을 연일 공박하고 있다. 지방자치선거는 1952년 시·읍·면 의원과 시·도의원을 선출한 선거가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선거다. 그 이후 1954년 시·읍·면장 선거가 추가됐고, 1960년에는 여기에 다시 시·도지사 선거가 추가돼 기초·광역자치단체장과 의원을 모두 뽑았으나 그 후 지방선거는 사라졌다. 그러다가 1991년 시·군·구 의원과 시·도의원을 뽑는 지방의회 선거가 시작되면서 지방자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됐고, 1995년에야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 선거가 추가됐다.

경북매일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6·2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의의 변화양상과 함께 올해로 20년의 역사를 맞는 지방자치제도의 개혁과제를 짚어보고 그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유권자, 지방선거 전략적 투표… 정치발전 `청신호`

정당 분권화·대중화 이어 공천·선거제도 고쳐야

지난 6·2지방선거는 당초에는 한나라당의 우세로 점쳐졌으나, 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한나라당은 텃밭인 대구·경북, 그리고 서울과 경기도는 간신히 지켜냈지만 경남과 강원 등 주요 접전지를 모두 민주당에 내주면서 사실상 참패했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에서 모두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앞섰다.

의외의 결과로 나타난 지방선거의 성적표는 여야 정치권에 향후 지방자치제도의 개혁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6·2지방선거 이후 나타난 새로운 정치현상

가장 먼저 한나라당 텃밭으로 여겨져 온 강원과 경남에서 집권당이 패배한 것은 한국의 정치지형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호남의 지역주의에 비해 부산·경남의 지역주의는 매우 취약해 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강원, 충남, 경남지사 선거에서 40대와 50대 초반의 친노무현 후보들이 승리함으로써 친노세력의 부활과 함께 야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이들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같은 분석에 따라 여당에서도 야당의 40대와 50대에 맞설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대교체론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2년, 2017년 대선을 향한 리더십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또 이번 지방선거로 정치성향이 다른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그리고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이 당선됨에 따라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심각한 마찰이 예상된다.

다행히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돼 이런 걱정은 덜었지만 인천, 강원, 경남, 충남 등지에서는 취임도 하기 전에 파열음이 먼저 터져나오고 있다. 이미 4대강 사업과 관련,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와 강운태 광주시장 등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

특히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는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4대강사업 공사를 반납하거나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경상남도는 8개의 기초단체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는데, 7개 자치단체는 적극 찬성하고 1개 기초단체의 당선자는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면서 “시급한 국책사업이고, 지역주민들의 뜻도 반대와는 거리가 먼 상황인데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뒤엎으려고 한다면 경남도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전략적 분리투표 행태가 나타난 것도 매우 의미있는 정치현상이란 분석이다. 막무가내식의 투표가 아니라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투표는 정치발전을 약속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광역선거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기초선거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등 전략적으로 분리투표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났다. 또 대구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층 지지자들이 과거 `일괄투표`(일명 줄투표:투표용지의 똑같은 번호를 세로로 내려가며 일렬로 찍는 투표행태를 말함)를 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1번 후보에 많이 투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의외로 이런 기호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지방자치제,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이런저런 변화속에 치러진 이번 지방선거 이후 여야는 지방자치제의 발전을 위해서나 정당정치 발전을 위한 개혁과제를 정립하고 있다.

인하대 김용호교수는 최근`지방선거 이후 정치개혁의 과제`란 제목의 세미나에서 새로운 정치개혁의 과제로 정당의 분권화, 생활정치 사업을 통한 정당의 대중화, 공천제도 개선, 선거제도 개선 등을 꼽았다.

정당의 분권화는 정치적 책임의 분산과 풀뿌리 정당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천편일률적으로 천안함 사건 중심의 선거운동을 펼쳤다가 선거에서 패배한 것도 중앙당 위주의 정당문화때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분권화가 꼭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후보 공천에 지방정당 조직의 자율성을 인정해 새로운 인재발굴과 육성은 물론 새로운 정치적 어젠다 개발에 힘써야 지지기반 확대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려면 전국을 망라한 지방정당 대표들로 당의 최고집행기구를 구성해 원내활동 이외의 일상적인 정당활동을 수행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생활정치 사업을 통한 정당의 대중화 역시 정치판의 권력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국민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생활정치 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지역과 선거구 사정에 알맞은 일자리, 보육, 교육, 건강, 여가활동 등 양극화 해소 프로젝트를 개발해 실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공천제도 개선은 이번 지방선거이후 가장 많이 지적된 개혁과제로 꼽힌다.

특히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기초의원이야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여파로 선거자체가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 만큼 예외로 하더라도 기초자치단체장 역시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이정진 조사관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지방선거와 한국정치의 발전과제`란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기초단위 선거에 정당공천제를 유지한 데 대해 일부 시민단체와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중심으로 폐지움직이 지속되고 있다”며 “그들은 정당공천제가 지방정치의 중앙예속을 강화시키고, 공천 비리 발생가능성을 높이며, 지역 국회의원 영향력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하지만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해소될 것이란 보장 역시 없다”면서 “이웃 일본의 경우를 보면 정당공천제속에서도 기초단위 선거에서는 정당의 영향력이 약화돼 대부분의 기초단체장과 약 80%의 기초의원이 무소속이 당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지역중심의 선거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기초단위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 폐지문제는 상당히 논란을 벌여온 사안으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지방자치발전을 위해서도 추후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선거제도 개선은 지역주의 완화, 정당의 대표성과 민주성 강화, 책임정치 구현 등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란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지역구의 10%로 돼 있는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을 더 올려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적어도 2대 1정도로 하자는 주장이 나와 있다. 현행 선거법상 비례대표의원에는 여성 의무할당제가 적용돼 비례대표의 50%가 여성이므로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성의원 의석도 확대되는 효과가 있으며, 지역주의도 크게 해소될 수 있다.

이밖에 이번 선거에서는 교육감 선거를 둘러싼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가 많았다.

그래선지 교육감 선거제도 개선방안으로 시·도지사와 러닝메이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러닝메이트 제도의 경우 당선후 양자간 정치노선 불일치에 따른 교육정책 수립과 집행의 마찰을 줄일 수 있고, 교육감 후보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설명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 이후 지방선거 어떻게 되나

현재 도에 대해서는 국가위임사무 업무 중 국가적 통일성을 요하는 사무를 비롯한 광역적 사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도와 광역시의 통합을 포함해 기능을 재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최근 경기도가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법안의 내용 중 100만 이상 시에 대한 소방사무 이양과 50만 이상 시에 대한 특례 등 다수 규정이 지자체 의견을 수렴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상황이다. 소방사무 이양의 경우, 정부 지원이 전체예산의 10%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산지원 없이 책임만 지라고 하는 것은 지방자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며 반대입장을 밝힌 것이다.

특히 50만 이상 시에 대한 특례규정의 경우, 기존 지방자치법 규정에 의해 충분히 보장이 되고 있는데, 굳이 특례규정까지 만들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도 개편 방안은 국회 소위에서 규정하지 않고 행정체제개편 관련법안이 통과한 뒤 출범할 예정인 대통령 직속의 `지방행정체제개편 추진위원회`에 위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는 앞으로 현행유지, 특별시·광역시·도의 광역화 또는 국가기관으로 기능전환 하는 등의 3가지 개편방안으로 나뉘어 논의될 전망이다.

현행유지안은 도 자치사무는 통합시·군에 대폭 이양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리고 특별시·광역시 통합 및 도간 통합을 추진하는 방안은 광역지방정부에 법률제정권, 조세조정권 등 권한이양을 위해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국가기관으로 기능전환하는 방안은 시·군 통합과정의 특정시점에 도의 자치기능을 폐지하고, 국가기관인 광역지방행정기구를 설치하자는 안이다.

다만 여야는 지난 4월 국회에서 통합지자체에 교육ㆍ경찰 자치권을 부여하고 구의회를 폐지하는 등의 내용에 어느 정도 합의를 본 상태다. 따라서 지방행정체제개편 기본법은 6월 국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향후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통합지자체와 대구광역시의 경우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자치구의 구청장은 그대로 직선을 하지만 기초의회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 구의원선거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6·2지방선거 이후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개혁과제는 분명하다. 지방행정 전문지인 `지방행정`편집위원인 이규환(중앙대 행정대학원장) 교수는 6월호 특집 `민선4기 지방자치 평가와 과제`의 시론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지방자치 부활 20년을 앞둔 민선 5기를 맞아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통한 지방자치단체 기관구성의 자율화,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 배제, 개헌논의, 자치경찰제 도입 등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한 과제 해결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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