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 시인
시와 신, 시와 시인, 신과 시인.

장독대에 놓인 크고 작은 항아리처럼 시와 관련된 글자를 서두에 써 놓고 창 밖 강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내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당신은 지금 사무실에서 오늘의 일거리를 바쁘게 진두지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남편과 자식을 일터와 학교에 보내고 차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혹시 당신 주변에 시인이 있는지요. 아니면 당신이 좋아하는 시인이 세상에 있어 위로받고 행복한지요. 그것도 아니면 당신은 좋은 시 몇 편을 기억하며 지갑 속에 꽂아놓은 그리운 사람 사진을 꺼내듯 종종 떠올려보는지요.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시는 감정의 표출로 누구나 쓸 수 있는 예술의 한 갈래입니다. 그런데 보다 전문적인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예리한 감성과 끝임 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일반인과 다른 품격을 갖춘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우리의 머리에 각인된 유명 시인 중에는 고독했고, 괴짜로 소문났고, 서른도 못 넘기고 요절한 시인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시인하면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지독한 애연가이고, 때론 새 한 마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책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계의 훌륭한 시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초인의 힘으로 예언자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시인은 한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인간의 맑은 영혼을 되살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번민했습니다.

영국의 윌리암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당신은 지금도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구태어 전문을 인용하는 이유는 다시 한번 시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적셔 보았으면 해서입니다.

“저 하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어릴 때도 그러했고/지금도 그러하고/늙어서도 그러하리/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내 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시는 인간의 삶을 응축해서 드러낸 글입니다. 시는 모든 예술의 가장 밑바탕에서 타 예술에 많은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편의 시에는 이웃의 목소리, 산과 강의 싱싱한 생명, 수평선 아래 펼쳐진 바다가 찰찰 넘치도록 담겨 있습니다.

좋은 시에는 무엇보다 대상을 향한 연민을 갖게 합니다. 고만고만한 현실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부조리를 살며시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연을 창조한 신의 목소리에 부응하는 일이고 뭍사람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길이며 모든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기억에 밑줄 긋게 하는 시인들의 시에는 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개발이라는 속도 앞에 많은 강이 본래의 모습에서 해체되고, 숱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에는 `내 하루가/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발걸음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쫒아가기에는 그 보폭이 너무 좁은 사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소중한 뭍 생명의 죽음은 미래의 지구를, 아니 이 땅의 미래를 걱정하게 합니다.

가슴 가득 시심에 젖었던 당신도 어느 과거의 동심이 경제 논리의 빠른 시멘트 속도에 굳어져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창 밖 강을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속에 머문 시는 안녕하지 안부를 묻게 되는 초여름입니다. 시와 신, 시와 시인, 신과 시인이란 글자를 불경(不敬)스럽게 짜 맞추어 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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