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서 활동 중견시인 여섯번째 시집
울산의 특수학교인 `메아리 학교` 시제
생명에 대한 성찰 큰울림으로 메아리

지역 중견 시인인 김만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메아리 학교`(서정시학 간)가 나왔다.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2007년 일상의 풍경을 촘촘한 언어들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다섯번 째 시집 `산내통신`에 이어 3년 만에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에 있는 청각장애학생과 지체부자유학생들을 위한 사립특수학교인 메아리 학교를 시제로 여섯 번째 시집을 펴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처럼 사회의 메아리가 될 성찰이 시집의 도처에 담겨져 있다.

특히 생명이 잉태돼 출산되는 산실(産室)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목격된다.

여성의 자궁이라는 직접적인 명명에서부터 꽃이나 집, 궁, 무덤, 다방, 학교, 모텔과 같은 은유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생명의 단초들이 발견되는 것이다.우리 곁에 늘 익숙한 호박에게도 꽃을 피우고 생명을 잉태하는 바야흐로 “몸을 가진 시간”이 있었고, 그리하여 그 시간을 견디고 서설 속에 핀 호박꽃은 “뜨거운 산란 중”이라고 노래한다.(`호박화`) 또한 `빈궁 마마`에는 “궁(宮)아 부서져 내려앉고 잘려나가”버려 생명의 밭을 잃고 “여자의 울타리”가 사라져 버린 노모의 삶이 그려져 있으며 왕릉이라는 죽음과 직결된 장소마저도 어린 처녀들이 “곡옥 같은 아이를 키우며”살아가는 다방의 모습으로 형상화 돼 있다(`왕릉다방`).

심지어 버려진 지 한참 지난 폐가에서조차 뭇생명들이 꿈틀대는 기미가 목격되곤 한다.

“폐가에 불이 들고 있다/천천히 근골을 펴는 흙집 울안으로/착한 불이 들어가고 있가 시린 삼월/식구들의 거친 잠이 머물던 곳/감나무 뿌리 꼼지락거리는 비탈/노모는 산을 뎁히고 있다….”(`빈 집`전문)

그런가 하면 시인은 남성성으로 상징되는 폭압적인 힘에 의해 생명의 싹이 유린당하는 광경을 고발하기도 하는데 이 목소리조차 오히려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의 그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쓰다듬는 듯한 시인의 목소리는 무쇠로 된 정으로 땅땅 내려치는 파열음보다 훨씬 울림이 큰 메시지를 전해준다.

“누가 열린 문을/두들기고 찢고 열어 젖히는가/그 안에 것은/또 다른 안에 것을 품고 있는 것이어서/아름다운 한 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고운 이름 꼭/간직되어야 하는 것을/열지 마라/잠그지 않은 것이니 열지 마라/문 안의 붉고 하얀 꽃잎을 찢어/시궁창에 버리는 너희들아/문 밖 목련꽃등 우련히 밝은데/잠그지 않은 문이니 열지 마라/열지 마라 너희들아”(`문(門)`)

시인은 `잠그지도 않은 문을 억지로 두드리고 찢어서 끝내는 열어젖히고 마는 잔인한 힘들`을 향해 “너희들”이라고 호명한다. 그런 너희들은 소중한 한 생명만을 유린한 것이 아니라 그속에 고이 들어 있던 “아름다운”또 다른 생명의 태를 끄집어내 갈기갈기 찢어놓은 것이라고 준열하게 꾸짖는다. 시인은 또 이 소녀들의 영혼이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문밖에 “목련꽃등”을 내걸어 놓고 곁을 지키며 가만히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나아가 무한한 창조력을 지닌 시간과 함께 고이 묻어주면서 생전에 간직하고 있던 생명의 태를 훨훨 나비로 날릴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향한 시인의 강렬한 열망이 투영된 또 하나의 대상은 바로 `고래`이다. 시인은 고래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이런 “기다림의 바다”장생포를 찾아가 소멸해가는 생명의 부활을 꿈꾼다.

“고래가 밥이고 하늘이었던 사람들/언젠가 찾아올 귀신고래를/간판 걸고 길 열어 놓고/고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장생포`전문)에게 고래는 그야말로 생명력 충만한 `희망`그 자체이다. 시인은 힘차게 솟구치는 고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고구려 전사들의 드넓은 기개와 용맹을 떠올리는데 고래가 찾아오는 그날 비로소 사람들은 “웅크린”가슴을 펴고 싱싱한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고증식 문학평론가는 “그는 아마도 점점 시들어가는 자신의 몸에 생명수를 수혈한다는 심정으로 바닷가를 달리고 있으리라. 또한 시인은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성찰해보고는 다른 이들로부터 `개평 뜯으며 건너온 길`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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