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역사가의 시간`
창비 刊, 3만원

`역사가의 시간`(창비 펴냄)은 일제시기부터 최근까지 한국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겪어온 원로 사학자 강만길(78)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삶을 한국 근현대사라는 격류의 가운데에 놓고 개인의 삶과 역사가 어떻게 조우하는지 `역사학적`으로 재구성한 자서전이다.

한평생 우리 근현대사를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진보적 지식인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한국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역사학자의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한 문헌적 의미도 지닌다.

`이야기`체 형식으로 재미있으면서도 논쟁적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학은 현실문제를 다루어야 하며 또한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또한 이 책의 부록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일지`는 저자가 노무현정부 시절 2년간 친일진상규명위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과거사 청산`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전개돼온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생생한 현장보고서다.

“분단된 민족사회의 다른 한쪽을 적이 아닌 동족으로 생각하는 역사인식의 소유자로서, 그리고 평화주의자로서, 냉혹한 민족분단시대를, 그것도 엄혹했던 군사독재시기를 살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학 전공자”로서 그는 평생 일기를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군사정권 시절 몇번씩이나 서재를 검색당해야 했고,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취조를 당했으며, 해직교수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30년이 넘도록 우리 현대사를 공부하고 겪으면서 쓰기를 바라왔던 `내가 겪은 우리 현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 앞에 꺼내놓았다.

저자는 한평생 한국현대사 전공자로 살아오면서 우리 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고 참여하면서 겪고 느낀 일을 겸허하고 솔직하게 돌아보는 자서전을 쓰는 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책에는 일제강점 말기부터 최근까지의 모든 시대사적 사건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경험과 논평이 총망라돼 있다. 초등학생으로 `창씨개명`을 겪은 일부터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쳐, 청년기에 4·19`혁명`과 5·16쿠데타 등을 목도하며 현실비판적 지식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었고, 5·18 광주민중항쟁, 6·10 민주쟁취운동, 민주정권 성립과정을 회고하며 술회한 당시의 복잡한 심경과 역사적 평가가 담겼다. 책의 후반부에 담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평가와 이 시기 약 10년간 통일고문을 맡으며 겪었던 일화들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저자의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한 평가는 새길 만하다. 부패한 이승만정권에 이어 군사쿠데타로 성립된 박정희정권 당시 민주주의는 말할 것 없이 후퇴했으며 경제적 발전을 운운하지만 분배 면에서는 실패해 부의 집중현상을 낳았고, 다시 조명되는 새마을운동의 성공에 대한 평가 역시 당시의 급격한 농민 이촌현상을 고려한다면 냉정하게 재고돼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