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시인
산다는 것은 유혹을 견디며 사는 일이다.

유혹이란 말뜻은 꾀어서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을 뜻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성적인 목적을 갖고 이성(異性)을 꾐이라고 국어사전은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유혹이란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선하고, 옳은 일을 가르치는 기독교의 핵심 기도문 `주기도문`에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란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난 굳이 유혹이란 표현을 길 뒤에 붙이려 한다.

길의 유혹(誘惑)

사실 인간은 많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물이다. 얼짱, 몸짱에 이어 근래 엉짱(엉덩이 몸매)의 유행도 자신의 몸매를 멋지게 보여주고자 하는 유혹에서 출발한다. 이런 육체적 유혹 외에도 세일을 하고 있는 백화점의 화려한 광고는 많은 여심(女心)을 유혹할 테고, 짧은 치마를 입고 날씬한 다리를 뽐내며 걷은 여성의 발걸음은 뭍 남성의 눈길을 유혹한다. 맛있는 음식은 또 얼마나 큰 유혹인가. 퇴근 무렵 코앞으로 풍겨오는 삼겹살 굽는 냄새에 기어이 동료들과 식당에 들어가 술 한 잔 나누는 풍경을 우린 도시 골목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수많은 유혹의 갈림길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길은 먹고 살기 위한 한 방편이면서 지혜의 폭을 넓히는 공간이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아니 여름이 되면서 주변으로 뚫린 길이 나를 유혹한다.

여름뿐이랴. 바뀌는 계절마다 그 계절은 독특한 향기를 갖고 내 마음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아니면 남쪽, 그것도 아니면 북쪽.

사방으로 열린 길 한 편에 붙어 있는 물상들이 전해주는 소식은 사향노루의 향처럼 코를 통해 내 오감을 자극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내가 가지 않았던 길을 좋아한다. 이미 갔었던 길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 빙빙 돌아서 그러니까 빨리 갈 수 있는 거리를 멀리 걷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길은 어느 누구보다 내 곁에서 나를 당겨주고 밀어주는 이웃으로 벗이 된다.

길을 나서보아라.

수많은 생명체들의 두런거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발견 안에서 길의 우화(羽化)도 보게 된다. 번데기가 날개 달린 곤충으로 하늘을 훨훨 날듯이 길은 껍질을 벗고 스스로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길의 유혹(誘惑)에 풍덩 빠지는 일은 길의 우화(羽化)를 보게 되는 일이다.

길의 우화를 통해 오늘도 이 지구상에는 수만 갈래의 길이 새롭게 뚫리고, 수만 갈래의 길이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결국 인간은 길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길 지향적 동물임을 길은 모든 수사법을 동원하여 증명하고 있다. 길의 유혹 저쪽으로 지났던 길이 지금 껍질을 벗고 있다. 현재의 나는 지난 길의 껍질을 뚫고 나온 존재이다.

주말이면 길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난 보따리를 싼다.

어느 수도자가 도를 깨닫기 위해서, 어느 점성술사가 더 많은 별을 보기 위해 걸었던 그 길에서 난 우리 역사를 일군 선현들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때론 어린왕자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기에 길은 우리 누구나 떠나고 싶은 낯선 여행지로 향하는 출발점이며 도착점이다.

초여름 길의 우화 안에서 난 디디지 않은 길을 찾아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그곳에는 전쟁의 두려움 대신 평화와 웃음이 푸르게 빛나고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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