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시골에 있는 학년 당 2학급 규모의 작은 학교였다. 당시에는 한 반에 60명 정도가 공부를 했는데 그 때문에 콩나물 교실이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 시골 아이들의 필통 속에는 학용품이 넉넉하지 못했다. 연필 한 자루만 달랑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한 자루의 연필도 요즘처럼 품질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나무에서 향기도 나지 않았다. 연필심을 가운데 끼우고 둥근 두 조각의 나무를 붙여서 겨우 긴 모양의 연필을 만들었는데 나무 부위가 달라서인지 붙인 나무의 색깔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연필을 깎다 보면 붙어 있던 나무가 반으로 쭉 갈라져서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연필심이 제대로 검은 색을 내지 못해 침을 발라야 글씨가 좀 선명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받아쓰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이 연필심에 침을 발라 쓰느라고 혓바닥이 까맣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낙타표 문화연필이라는 제법 품질이 좋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침을 바르지 않아도 선명하게 글씨를 쓸 수 있어서 좋았고, 향나무로 만들어져서 향기가 좋았다. 나무결도 부드러워서 칼로 깎기가 쉬웠다. 게다가 성능 좋은 지우개까지 달려 있어서 잘못 쓴 글씨를 슥슥 지울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연필 한 자루에는 56Km나 되는 길이의 선을 긋고, 4만 5천 단어를 쓸 수 있는 흑연이 들어 있다. 이 정도면 두 자루의 연필만으로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쓸 수 있고, 화가는 화랑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의 그림을 스케치 할 수 있다.

연필은 우리가 생각한 바를 그림이나 글씨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때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사용하면 표현된 것이 잘못 되었을 때 부담없이 이것을 다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볼펜이나 발달된 필기도구가 나와서 편리하기는 하지만 한 번 쓴 것을 다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요즘 볼펜과 같이 한 번 쓰면 지울 수 없는 필기구를 주로 쓰는 중고등학생들이 연필을 쓰는 초등학생들 보다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입시 위주의 정답 찾기 공부를 하느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우고 다시 쓸 수 없는 볼펜을 사용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창의시대에는 생각을 한 번 하고 수정을 하지 않는 볼펜형 사고 보다는 자유롭게 쓰고, 다시 수정하고 다듬을 수 있는 연필형 사고가 필요하다.

연필형 사고는 일종의 열린 사고이다. 부담감 없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틀리면 쉽게 지우고 고칠 수 있다. 이러한 열린 사고가 창의성의 기본 속성이다. 열린 사고를 위해서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우선 스스로가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불완전한 자신이 낸 생각과 표현이 언제든지 더 나은 것으로 고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보다 더 나은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와 같이 열린 사고를 하는 가운데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학교 운동장에 벼룩 한 마리가 나타났다. 벼룩은 힘껏 공중을 향해 뛰어 올랐다. 드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오르자 거치는 것이 없어 너무 좋았다. 마침 운동장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벼룩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드디어 내가 운동장을 정복했다. 이제 이 넓은 운동장은 벼룩이가 접수한 거야!”

멀리서 이 소리를 들은 강아지가 피식 웃으며 지나갔다.

오래 전 인간이 달 착륙에 성공하였을 때 신문에는 “인간이 드디어 우주를 정복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우주 전체를 생각할 때 달은 그야말로 조그만 행성에 지나지 않는데 달에 겨우 도착한 것을 가지고 우주를 정복했다고 한 것은 벼룩이가 운동장을 정복했다고 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무튼 어떤 현상에 대해 벼룩처럼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차원을 넘어서 전체 속에서 서로 간의 연결고리로써 파악하는 것을 시스템 사고(System Thinking)라고 한다. 이것은 전일적 사고(Holistic thinking)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연필형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노트북이 나와서 연필이 별로 필요 없게 되어 간다. 다행스러운 점은 노트북이 고치고 지우는데 있어서 지우개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트북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되 연필형 사고를 하여서 열린 마음으로 더 나은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주어진 문제 상황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창의력이 강한 체질로 자라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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