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체육교사인 K는 항상 가방을 하나 손에 들고 다닌다. 화장실 갈 때에도 들고 가는 그 가방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는데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간혹 그 가방에서 수첩과 필을 꺼내어 적는 것도 보았고, 운동장에서는 호루라기나 장갑을 꺼내는 것도, 멋있는 선글라스를 꺼내어 쓰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런 필요한 잡동사니 물건들이 든 가방이라는 짐작이 들었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숨어있을 것도 같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열심히 적는 수첩을 한 번 훔쳐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방금 전화한 번호와 이야기의 요약 등이 적혀 있고, 오늘 해야 할 일과 어제 해야 할 일들이 오늘로 미루어진 일 등이 빼곡히 적혀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가방 속에는 무언가 또 다른 새로운 비밀한 것들이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만큼 세밀하게 자기 일정을 관리해 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루에 적은 항목만 해도 거의 30줄이 넘었다. 가히 그 몇 줄 글자 속에 그의 시간들은 충분히 다림질 되어 있었다. 얼마나 꺼내고 넣고 하였는지 손때가 묻고 가생이가 다 닳아 너덜너덜한 수첩, 그의 주변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열고 했던 흔적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반성이 되었다. 늘 잊어버린 약속들, 늦게야 찾아가고 생각해 보고 후회했던 일들, 그런 일들에 대한 돌이킴도 없이 내 속으로만 함몰되어 있던 시간들이 반성이 되었다. 전화한 내용을 메모하고, 잊지 않고 전화하고, 약속을 빠뜨리지 않고 생각하고, 만나고 관계를 열어 가는 K의 모습이 그대로 수첩에는 녹아 있었다. 아마도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 속은 더 큰 비밀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이 생각든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휴게실에 앉으면 부탁해서 가방을 열어보리라.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에 어쩌다 놓고 가 버린 가방을 열어보게 되었다. 기대가 컷 던 것일까. 정작 열어보니 호루라기와 선글라스, 수첩 등 별것 들어있지 않고 먼지만 폴싹인다. K는 저만치서 웃으며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면 당연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조선상인들이 러시아국경을 넘을 때, 곰방대 하나만 등에 꽂고 넘어 다녔다고 한다. 그때 국경을 지키는 러시아 군인들이 조선상인들이 등에 꽂고 다니는 곰방대가 총은 아닐까 생각해서 요리조리 살펴보고 쪼개어도 보고 결국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고개를 갸우뚱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살벌한 시대라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몸에 총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아무 것도 믿을 것 없이 곰방대 하나만 허술하게 등에 꽂고 국경을 넘는 조선상인들을 생각해보라. 허수룩하지만 용기가 있고 담대한 조선 사람의 참 모습을 러시아 군인들이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좋은 결과가 나오고 선한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처럼 자기가 믿는 것 외에도 다른 가치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탓이다. 선한 사업이 성하면 그 속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가 하여 의심하고 열심히 뜯어보고 조사해보기 마련인데, 정작 들춰보면 조선인의 곰방대같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이 말이다. 선한일의 진실은 쉽게 감추어지고 껍데기만 드러나는 법이다. 그러나 어찌알랴. 그러한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진실을 몸소 지금 바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을….

K의 생활 태도가 늘 자신과 남을 챙겨주는 것이므로 그저 가방을 통해 모든 쓸모 있는 것을 찾고 관리해나가는 것이리라. 그러니 뭐 별다른 내용물이 있을 것이라고 덤벼든 내가 마치 휘적휘적 여유롭게 국경을 넘는 조선상인들 앞의 러시아 군인과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모든 비밀스러운 것은 다가가서 조사하고 살펴보면 먼지만 폴싹이는 저 K의 가방같은 것이기도 하리라. 그 가방은 우리가 알 수 조차 없는 비밀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어둠속에서 내밀하게 만들어지는 삶은 K의 손에 의해 들락거리며 만들어지고 빛으로 변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 말엽의 곰방대가 위험한 국경을 여유롭게 넘겨주는 총이 되어 준것 처럼 누구에게는 빛이 되고 누구에게는 어둠이 되는 이 비밀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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