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브라운아이드소울`·`에이트` 등 발라드 상승세
가요 관계자들 “판박이 아이돌 댄스음악 식상함이 원인”

음악사이트 인기차트에서 아이돌 가수들이 사라지고 있다. 4년째 아이돌 댄스곡이 장악한 가요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7일 엠넷닷컴 인기차트를 살펴보면 1위가 바이브의 `다시 와주라`, 2위가 에이트의 `이별이 온다`, 3위가 바이브의 `미친거니`, 4위가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러브 발라드` 등으로 감상용 발라드곡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멜론과 싸이월드뮤직의 경우에도 16일 발표한 원더걸스의 신곡 `투 디퍼런트 티어스`가 1위를 차지했지만 상위권에는 바이브, 다비치, 뜨거운 감자, 에이트 등이 올라있다. 2007년 원더걸스의 `텔 미` 이후 빅뱅, 2PM, 소녀시대, 투애니원, 애프터스쿨, 포미닛 등의 아이돌 그룹이 1위 자리를 차례로 이어갔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가요 관계자들은 판박이 아이돌 댄스 음악에 대한 식상함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데서 원인을 찾는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는 “보통 2~3년이면 트렌드에 피로감을 느낀다”며 “멜로디와 가사가 반복되는 후크송(Hook Song)이 특징인 아이돌 댄스 음악에 피로가 쌓인 것이다. 특히 원더걸스 선미의 탈퇴, 소녀시대 신곡 `런 데블 런`의 실패 등 걸그룹 두 강자의 신변 변화가 아이돌 전체 입김의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2005~2007년 미디엄 템포 발라드 유행의 중심에 섰던 작곡가 조영수도 “당시로서는 신선했던 미디엄 템포 발라드로 장르가 쏠린 적도 있었으나 3년이 지나니 사람들은 식상해 했다”며 “비슷한 기계음과 템포 등 아이돌 그룹이 검증된 스타일의 곡을 답습한 것이 원인이다. 그런 와중에 브라운아이드소울, 바이브, 다비치 등 보컬의 힘이 센 그룹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고 말했다.

SG워너비의 이석훈도 “아이돌 그룹 음악에 대한 네티즌의 댓글을 보면 `기계음`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더라”며 “음악 팬들이 기계음에 대한 피로감을 느꼈기에 목소리가 주인공이 되는 음악을 찾는 듯 보인다. 이것이 또 하나의 흐름이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부에서는 천안함 사태가 분기점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젊은층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패턴이 정치, 사회적 사건의 분위기와 발맞추진 않지만 천안함 침몰이 아이돌 음악의 하락세에 어느정도 영향은 미쳤다는 견해다.

한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대표는 “천안함 사태 이후 지상파 방송 음악 프로그램들이 5~6주가량 결방되면서 비와 이효리, 아이돌 그룹 등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가수들이 상승세를 지속하기 힘들었다”며 “공교롭게도 이 시기 대중의 기대치가 높은 실력파 발라드 가수들의 감상용 음악이 쏟아져 아이돌 음악이 상대적으로 묻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돌 음악이 하반기 가요계에서 어떤 입지를 차지할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조영수 씨는 “요즘 아이돌 음악은 퀄리티가 높아 이미 대중의 신뢰도가 쌓였다”며 “어느 한곡이 기대에 못 미쳐도 다음 곡을 기대하기에 유행이 오래 가고 있다. 원더걸스, 빅뱅의 초기 음악이 새로웠듯이 음악적인 변화로 신선도를 유지한다면 기본 팬층이 있기에 다시 일어서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임진모 씨는 “2007년 여름, 발라드가 유행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는데 올여름에도 발라드가 강세를 띌 것 같다”며 “올해도 서민 경제가 압박받고 있는 만큼 연말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는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므로 발라드가 인기있을 것이다. 발라드가 소생하면 아이돌의 댄스곡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르가 동시대에 공존하는 것이 건강한 음악 시장을 형성하는 토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40대의 한 중견 가수는 “특정 시기, 특정 장르로 쏠리기보다 발라드, 댄스, 포크, 록,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가 한 음악차트 안에 고루 포진하는 것이 건강한 음악 풍토를 일구는 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