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시인
5월 초 우리 지역에서 열린 축제 두 군데를 둘러보았다. 제10회 경주신라도자기축제와 제12회 문경찻사발축제다. 전시된 도자 작품을 보며 난 그분을 떠올렸다. 우연히 그분을 만나며 난 도자기의 깊이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았고, 그 분야에 안목을 높일 수 있었다.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름한 작업장에 고개를 들이민 난 물레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서까래가 보이는 낮은 천장 아래 매달린 전구는 50년대 소설의 배경처럼 어둡기까지 했다. 그녀는 물레를 발로 차면서 손으로 찻사발을 빚고 있었다.

“도자기 감상 능력을 배울까 해서 구경왔습니다”

“도자기를 이해하려면 만들어 봐야지 구경만 해서 되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제 나이에 이런 것 배워야 돌팔이밖에 더 되겠어요. 그냥 감상 능력만 키우려고 합니다”

도자기에 일자무식이나 다름없는 난 그 날 이후 그의 팬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바쁘지 않으면 두어 번 그를 찾았다. 물레로 그릇 성형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을 땔 땐 일부러 찾아가 가마 속 하얗게 날선 기물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때론 그와 차를 나누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어느 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다도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종종 서산대사의 시나 추사 김정희의 글씨(茶半香初)로 유명한 중국 송나라의 황산곡(黃山谷) 시를 낭송했다.

정좌처차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 내가 고요히 그 자리 들어서니 차향이 코에 스며들더라

그 이루는 모습이 개울가에 꽃 피는 것과 같네 (그분의 해석)

며칠 전 햇살 좋은 주말이었다. 내 바쁨으로 한 달 정도 들르지 못했던 그의 작업장을 찾았을 때 그는 물레 앞에 앉아 찻사발을 빚고 있었다.

좋은 찻사발은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하고, 혼(魂)이 담겨있어야 해요. 그 혼은 찻사발에 우주원리가 드러나는 거예요. 보세요. 이렇게 물렁물렁한 태토가 회전원리에 의해서 성형되고, 불에 의해 돌처럼 되잖아요. 이 모든 순서가 우주의 탄생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찻사발을 만드는 것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스스로 터득해가는 오묘한 작업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원리 원칙을 따르는 무심(無心)의 경지고, 그 다음이 흙과 불이에요. 아니 그 모든 과정이 일체가 되어야 해요.

40여 년 전, 그러니까 70년대 초 우리나라의 다도(茶道)를 정립하고자 전통 찻사발 재현에 나섰는데 세상의 착각과 오판 속에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자각 지감의 깨달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려는 폐암도, 찾아온 자궁암도 자연에 순응하고, 시간의 흐름에 조화를 이루면서 극복했다고 했다.

“가마에서 나온 물건을 도예가들은 거침없이 깨버리던데 선생님도 많이 깼겠어요”

그분은 말했다.

“잘못된 생각이에요. 가마에서 나온 그릇 그 자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쓸모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해요. 우주 탄생의 출발에서 불량품은 없어요. 못생기면 못 생긴 대로 역할과 쓸모가 있는 거예요. 스스로 자기 작품을 희소하게 만들어 높은 값 받으려는 일종의 사기예요”

생성과 소멸의 중간, 물레 앞에 앉아 땀 흘리고 있을 그분의 나이는 묻지 마시길-. 당신이 운이 좋다면, 그의 작업장에서 그가 물레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을 터이니―. 생명의 소중함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당신에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노익장 그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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