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
지난 시절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엄하여서 사랑과 자애로움도 감춰 두고 자식에게 함부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가을 들판에 참새 떼들이 날아들어 나락을 까먹으면 아까운 농사를 망치므로 학교가지 않는 휴일에는 거의 논에 나가서 깡통을 두드려 새들을 쫓아야 하는 때가 있었다. 하루는 논에 나가는 척 집을 나와서는 논에 나가지 않고 몰래 친구들과 어울려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담장너머로 아버지의 얼굴이 쓱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콩닥콩닥 콩만해져서 아버지의 눈길이 이쪽으로 왔는지 안 왔는지도 살피지 않고 뒤란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다른 마을까지 뛰고 또 뛰었다. 이왕 나온 김에 읍내까지 가서 시장이라도 구경하고 들어갈까 생각하고는 읍내로 향했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시장통을 돌다가 주린 배를 안고 떡을 훔쳐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장도 파하고 밤이 되어서야 `이젠 할 수 없다. 야단맞고라도 집에 들어가야지`생각하며 먼 길을 따라 걸어 돌아왔을 때였다. 밤이 늦어 분명 불이 다 꺼졌을 법한데도 삽짝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툇마루에 불이 켜져 있고 아버지가 마루에 걸터 앉아계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웠지만 그 얼굴은 등 뒤에 밝게 켜놓은 전등에 그늘이 져서 그런지 평소 그 엄하신 모습이 아니었다. 삽짝에 붙어 앉아 들어가시길 기다렸는데도 한참 들어가시지 않고 계셨다. 아버지가 마침내 한숨을 쉬시고 불을 끄시고는 들어가시자 몰래 형들이 자고 있는 아랫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아침 늦게 잤는지 어머니의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밥 먹고 학교가야지` 부시시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일찍 논에 나가셨는지 뵈질 않았다. 그이후로도 아버지는 그날 일에 대해서 아무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요즈음 아버지는 이런 권위를 다 잃어버렸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세월은 가고 아버지만 홀로남아 허상의 권위를 주장하다보면 자식과 갈등하고 아내와 갈등하고 가정은 풍비박산나고 마는 것, 이런 현상이 도처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셀 수 없다.

이런 고민에서 아버지학교 운동이 1995년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전 세계 40개국 226개 도시에서 열리고 17만 6천명의 수료자가 배출될 정도로 커졌다. 아버지학교는 아버지의 감춰진 자애로움과 사랑을 드러내어 표현하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사랑과 인도자로서 가정회복을 이루고 아버지의 진정한 권위를 회복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못난 자식이라도 온전히 기뻐하며 사랑하고 칭찬할 때에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국회의원 K씨는 중학시절부터 태어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나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외로운 자취방에서 만화에 빠진 그는 그만 학교시험을 엉망으로 망쳐버렸다. 학기말이 되어 성적표를 들고 가 아버지께 보여드릴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그래서 350등이란 숫자위에 1/ 을 교묘하게 그려 넣었다. 그걸 본 아버지가 `우리 아들 1등 했으니 경사났네` 라며 무척 기뻐하셨다. K씨는 마음이 어두워져 냇가로 나와 앉아 가슴을 치며 마음을 추스려 집으로 돌아갔는데 아버지는 그 사이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동네 잔치를 열었다. 자신의 거짓말에 자신의 집 전 재산에 가까운 죄 없는 돼지 한마리만 잡혔던 것이다. 그날로 K씨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로 진학했음은 물론 나중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때는 정말 돼지가 아니라 소를 잡아서 동네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싶어서 `아버지 그때 그 성적표는…` 이라고 운을 떼자 아버지는 `350등을 1등으로 바꾼 거, 예끼 이놈아! 내가 그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했느냐`며 호통을 치시는 게 아닌가.

그를 행시까지 합격하도록 만든 것은 그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아버지의 깊은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이다. 자식이 못났더라도 훌륭하고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속아 주는 것, 오히려 그렇게 믿고 칭찬하며 축복해주는 것, 그것이 자식을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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