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를 잘하면 철학자가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딴따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페이드 아웃`(화면이 점점 희미해짐)되는 겁니다. 붙잡는 게 많을수록 힘듭니다. 어느 순간 무언가 붙잡은 걸 놓고 나니 편안해지더군요.”

배우 윤여정(63)은 올해 칸 영화제에 간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처음이다.

그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는 영화제 공식부문에 나란히 진출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두 편의 영화가 초청돼 칸을 방문하는 여배우는 윤여정이 유일하다. 남자 배우로는 `올드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지난 2004년 칸을 방문한 유지태가 있다.

윤여정은 지난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오래 연기하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는 `하녀`에서 늙은 하녀 `병식`을 연기했다. 훈(이정재)과 해라(서우)가 사는 대저택을 관리하면서 은이(전도연)를 감시하는 인물이다.

“임상수 감독이 두 `하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은이가 아름답고 추상적이라면 `병식`은 현실적인 하녀라고 하더군요. 감독의 지시에 맞춰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웃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고(故)김기영 감독(1919-1998)의 역작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임 감독의 리메이크작은 중산층이 파괴되고, 빈부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우리사회의 풍경을 은이, 병식 등을 통해 그렸다.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화녀`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 한 영화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김기영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예전에는 현장에서 매번 투덜거렸죠. `충녀`의 알사탕 정사장면을 찍을 때는 몸에 사탕이 배겨서 너무 아파 울기도 했어요. 감독님께 왜 이런 걸 찍느냐고 칭얼대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한 게 후회되네요.”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 장면을 3번 이상 촬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연기하기에 어려웠던 장면을 물으니 은이에게 뺨 맞는 장면이라고 했다.

“난 도연이가 그렇게 세게 때릴지 몰랐어요. 눈물은 커녕 골이 아파지면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어요. 은이의 감정으로 치는 게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칸의 여왕이라더니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죠.”(웃음)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이야기를 꺼내자 눈을 빛냈다. 그는 평소 홍상수 감독과의 함께 작업하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작업해 보니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30번씩 재촬영을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머리가 핑핑 돌면서 `별`이 보이더라고요. 성질을 있는 대로 부렸습니다. 상경이가 중재를 많이했죠.”(웃음)

영화는 선후배 사이인 두 남자가 얼마 전 각자 통영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술자리에서 여행담을 풀어놓는 이야기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문경(김상경)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통영에서 허름한 식당을 하는 여주인 역이다. 서울과 통영을 오가야 했지만 무보수로 출연한 탓에 “기름 값도 받지 못했다”며 그는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