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서 지방대 출신 구직자 역

정유미
“멀쩡한 직장인을 연기한 건 처음이에요. 매일 구르고 달렸는데 이번에는 정상적인 연기를 한 것 같네요.”(웃음)

배우 정유미는 `4차원`이라는 말을 꼬리표로 달고 다닌다. 행동이 엉뚱한데다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기자간담회나 각종 인터뷰에서 그녀는 당황해 하기 일쑤다. “보도용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여전히 떨린다”는 그는 최근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언론 시사가 끝난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도 터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서 말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하지만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이 같은 모습과는 달리 영사막에 비친 정유미는 확신에 차 있다. 어눌한 말투와 흐물거리는 몸짓은 어느새 당당한 배우 정유미의 뒤꼍으로 숨어버린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정유미의 당당한 매력이 빛나는 영화다.

정유미는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지방대 출신의 20대 여성 한세진 역을 맡았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학력 차별이 존재하는 싸늘한 사회 현실 속에서 면접조차 제대로 볼 기회를 얻지 못하는 `88만원 세대`의 일원이다.

“면접 볼 때 임원들의 지시로 세진이가 춤추는 장면이 있죠. 약간의 과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친구들이 말해주더군요. 제가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요”(웃음) 그는 직장생활이 때때로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 출근할 것을 생각하면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자신은 없다고 덧붙였다.

정유미는 작년 신정원 감독이 연출한 괴수영화 `차우`와 `서바이벌 게임`을 소재로 한 `10억`(조정호 감독)을 찍었다. 무언가에 쫓겨 달리는 장면이 유난히 많았던 영화들이다.

“들판에서 뛰어만 다니다가 멀쩡하게 나와서 적응이 안 됐어요. 주변에선 정장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해줬지만,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여성의 일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태프들과 감독님에게 `제 연기 괜찮은 건가요?`라고 계속 물어봤죠.”

영화계에서 정유미는 “연기 욕심이 많은, 그리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통한다. 신정원 감독은 “연기 욕심이 정말 많은 배우”, 홍상수 감독은 “연기 참 잘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 등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차우`, `10억` 등 4편의 영화를 소화했다. 쉬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육체적인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은 탓이 더 컸다.

“현장을 자주 경험한다고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현장마다 느낌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한 인물을 연기했다고 해서 이 인물에서 배운 연기를 다른 현장의 다른 인물에 써먹기는 어려워요. 작년 에 바빴지만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무언가 자신을 추스르고 싶었던 그때, `내 깡패같은 애인`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소속사는 이 영화를 하자고 했고, 정유미는 그 제안을 뿌리치기 어려웠다고 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노 개런티로 출연하면서 하고 싶은 영화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유미는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서 고행하는 세진 역이 쉬울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더욱 어려울 수도 있어요. 배우의 경험은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만 연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나의 경험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요.”

신중함의 결과일까? 정유미는 이번에도 다양한 매력을 뿜어내며 세진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올해 들어서는 홍상수 감독의 11번째 장편 `옥희의 영화`를 찍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배우라는 건 정의하기 어려워요”라고 골똘히 생각하면서 “현실에 충실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