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번 방중 초점이 경제협력 부문에 맞춰져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으나,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북한 측이 밝힌 입장이 진전된 내용인지를 놓고는 엇갈리게 평가했다.

 또 경제협력 문제도 논의됐겠지만 북한이 만족할 만한 ‘과실’을 얻지는 못한 것 같고, 김정은 후계 문제도 중국 지도부가 ‘일단 이해한다’는 수준에서 암묵적 공감이 이뤄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양국간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고 실질적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후진타오 주석이 고위층 교류 지속, 전략적 소통강화 등 5개항을 제안한 것은 김 위원장의 후계구축 과정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보여준 것이다. 특히 ‘전략적 소통 강화’ 대상에 ‘내정’ 부분까지 포함시킨 것은 ‘내정 불간섭’을 외교의 대원칙으로 중시하는 중국 입장에서 상당한 신뢰와 지원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측 수행단이 경협 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당과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짜여진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김평해 평안북도 당 책임비서와 태종수 함경남도 당 책임비서가 처음 수행한 것은 신의주 특구와 함경남도 자원 개발과 연관됐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의 경제특구인 다롄과 톈진을 방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나, 비교적 움직임의 폭이 넓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효과도 봤을 것 같다.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서는 기존 논의선상에서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고 본다. 북한은 작년 하반기 이후 보여줬던 수준의 대화의지를 재확인하면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을 세워줬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천안함 사건을 문제 삼지 말고 기존 트랙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김 위원장이 중국의 경제특구 2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 방중의 초점이 경협과 해외투자 유치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영춘(국방위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과 주규창(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겸 국방위원)이 동행한 것은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과 경제협력 문제를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가 보장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고 본다. 북한이 6자회담 전제 조건으로 주장해온 ‘대북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를 거론하지 않고, ‘6자회담 재개에 양측이 노력과 성의를 다 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 그렇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언급을 피해온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 합의’란 표현을 쓴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후계 문제는 이번 방중의 주요 의제가 아니고 양 정상이 직접 논의하지도 않은 것 같다. 다만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후계자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처음 수행한 부분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권력승계가 이뤄진 후에도 양국간 친선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시그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이 거론됐다면 북한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을 것이고 중국은 ‘두고 보자’는 정도로 답했을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체적으로 예상보다 새로운 게 없다. 방중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북중 관계를 돈독히 했다는 것이나 정상들이 만나면 항상 나올 수 있는 수준이다.

 북한 매체가 정상회담 부분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정상회담 결과가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정상이 후 주석을 잇따라 만나면서 중국이 뜻대로 안 된다는 점을 북한이 느꼈을 수 있다. 중국이야 말로 남북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한 것 같다.

 북중 경협에서도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기존 수준 정도로 가자는 것이어서 김정일이 서운했을 수 있다. 이런 결과를 공식화하기 부담스러우니까 북한 매체가 방중 자체를 ‘동북 지역’ 방문으로 톤타운한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북한과 중국 매체의 방중 보도가 서로 다른 것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다. 북한 매체는 방중의 전반부만 전하고 중국쪽은 전체적인 틀을 보도하는 것으로 분담한 것 같다.

 역시 가장 큰 부분은 6자회담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유관 당사국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길 희망한다’고 말한 것은, ‘우리는 6자회담 재개 준비가 다 됐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천안함 사건으로 코너에 몰리는 상황에서 6자회담 재개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후 주석이 전략적 소통과 국제.지역적 협력 강화를 제안한 것도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해된다.

 경협 부분에서 중국은 일방적 퍼주기보다, 소통과 정보 공유를 전제로 하는 형태를 요구했을 것이고, 북한은 경협의 수준을 최대한 높이자고 요청했을 것이다. 중국의 식량지원이 보도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식량 지원도 얘기가 됐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중국은 중립적 스탠스를 취하면서 정보 공유(사전 통보)를 강조했을 수 있다. 후 주석이 ‘양국간 우호 관계를 대대손손 계승하자’고 말한 대목은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최종적 입장이라기보다 ‘이해한다’ 정도의 언급으로 보인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북한과 중국의 보도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양측이 모든 부분에 합의한 것 같지는 않다. 양쪽 모두 톤다운 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북한쪽 기대가 잘 먹혀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6자회담과 관련해 중국 매체가 보도한 내용은, 중국 입장을 의식해야 할 김 위원장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다. 경협도 북한이 원하는 만큼 지원하기로 정부 차원의 약속이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유엔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아 중국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이 북한에게 불만일 수 있다. 가극 ‘홍루몽’ 관람이 무산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