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일본탐정기`(랜덤하우스 펴냄)는 소설가 박덕규(52)씨가 올해로 입적 400주기를 맞는 사명대사(1544~1610)의 삶을 조명한 역사소설이다.

소설가이자 시인,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박씨가 6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조선 중기를 살았던 당대 가장 존경받은 승려이자 문인 학자들과 교유하며 무수한 시문을 남긴 문화인, 왜란 중에는 의승군을 이끌어 나라를 지킨 의승장이자 대명·대일 외교가였던 사명대사 유정(속명 임응규)의 전설적인 활약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소설은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할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선조가 1604년, 61세의 사명대사를 일본 현지로 보내기로 했다는 데서 시작한다.

사명대사가 대마도에서 머물다 교토에 들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논하는 과정과 이후 조선통신사 파견 등을 다룬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장이던 가토 기요마사가 “이제는 물그릇마저도 모두 조선 도공들이 구워낸 사발”이라며 그릇을 던져버리는 장면을 통해 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소설 속에서 일본인들은 끔찍한 전쟁을 벌이고도 스스로 그 책임은 묻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조선 침략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내린 결정에 따른 정당한 행위의 비극적 결과일 뿐이다. 전쟁이 양국에 어떠한 참극을 가져왔더라도, 전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파가 전쟁 후 벌어진 격렬한 내전에서 대부분 죽거나 권력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책임 운운에 답할 사람이 없다는 논리이다. 그 누구도 무참한 학살과 약탈이라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의 마음에 죄를 묻지 않는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고된 여정을 떠난 사명대사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바로 이런 일본의 비뚤어진 정신이었다.

저자는 사명대사와 함께한 비승비속의 사내들, 비구로 변복한 기생, 인삼 상인, 항왜(降倭)의 제자들,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조선 옹주와 환관, 쇼군, 번주, 승려, 유학자, 사무라이 등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왜란 후 조선과 일본의 사회상을 섬세히 재현한다.

나아가 전쟁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힘겹게 회생하려는 조선과, 전쟁의 기억을 떨치고 새로운 지도자의 통치 아래 풍요와 번영으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시대정신을 날카로운 통찰로 담아낸다. 400여 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본질을 꿰뚫고 3천 명의 피로를 구한 사명대사의 탐정기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작가는 “사명대사는 한국적 특징인 불교, 유교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전쟁과 외교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공신이지만 그의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한편으로는 활약상에 비해 그것을 공인하는 사료들이 크게 분산돼 있다는 사실이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박덕규 `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랜덤하우스 刊,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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