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수산 씨가 7년 만에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해냄출판사 간)`를 펴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80년대 필화사건을 겪은 자신의 삶을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엮었다.

신군부에 의해 이른바 `필화사건`을 겪었던 한씨는 신작을 통해 근 30년 만에 당시 겪은 고초를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작가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남긴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가톨릭에 귀의한 뒤 상처를 치유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고통의 과거와 마주하고 이 시대 진정한 용서와 화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경제성장기에 겪어야 했던 주인공들의 정신적 공황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 몇 군데 단순하고 지엽적인 묘사가(구성이나 설정이 아닌)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제5공화국의 최고위층을 모독하는 동시에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아내를 잃은 채 가난하게 살아가는 집배원과 그의 세 남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현실 속에서 어떤 이상이나 혁명도 부패라는 벌레에 먹히고 마는 역사를 간접적으로 형상화했는데, 이것이 `국가원수 모독`, `군비방과 이적행위`, `사회부정시`라는 죄목으로 덧씌워져 무자비한 감금과 폭행으로 되돌아왔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의 삐라 살포나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일명 `한수산 필화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로 작가는 고문당하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걱정하던 애틋한 사람들까지 등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30년이 지난 일임에도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묘사된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작가는 세 번째 시도 만에 드디어 가톨릭에 입문한다.

그러나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김수환 추기경의 `용서는 먼저 피해자가 해야 한다`는 말씀은 과거의 상처와 깊은 분노 속에 번민하던 작가에게 대립각을 이루면서 또 다른 고통과 갈등의 요인이 된다.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1년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어린 시절을 보낸 군위의 옛집, 식민지 청년의 들끓는 가슴으로 고뇌했을 도쿄의 조치대학, 어머니와의 사랑이 아롱지고 영근 대구의 주교좌 계산성당, 첫 사목지인 안동의 주교좌 목성동 성당, 젊은 사제의 청춘이 묻어 있는 김천의 성의여고와 황금동 성당, 영원한 안식에 드신 용인의 천주교묘원까지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하느님의 용서는 참으로 우리에게 한없이 큰 위로가 되고, 그것은 곧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고, 어둠에서 빛으로, 실망과 좌절에서 희망과 재기로, 죽음에서 부활로 인도하는 구원과 생명이 됩니다”라고 한 추기경은 곧 한국의 현대사였고 가톨릭사였고 정신사였음을. 그분의 생애를 따라가는 길은 `생명을 준다`는 의미의 라틴어 알마(alma)의 길에 다름 아니었음을. 그리고 족쇄처럼 굳어진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처음으로 용서를 말하고 화해를 이야기한다.

작가생활 34년, 100여 권의 주옥같은 책을 발표하며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도 남몰래 겪어낸 아픔을 이제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게 된 한 작가의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는 하루하루의 삶에 지치고 현실에 대해 분노하며 고통스러운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용서와 화해의 이름으로 서로를 가슴으로 끌어안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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