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희망,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에두아르 드 라불레의 제의로 프랑스 출신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제작했다. 당초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 7월 4일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동상은 프랑스에서, 동상 받침대는 미국에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비용은 두 나라 정부 지원이 아닌 두 나라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모금액이 줄어들어 1881년에야 겨우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각가 바르톨디는 자신의 어머니를 여신상의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고령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같은 포즈를 취하기 쉽지 않아 어머니를 닮은 젊은 여인을 찾아 모델로 삼았다. 훗날 바르톨디는 여신상의 모델이 된 여인과 결혼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4년에 프랑스에서 완성되었지만, 미국에서 준비하기로 한 받침대가 완성되지 않아 바로 보낼 수 없었다. 성금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던 탓이다. 이 과정에서 성금 모금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유명한 신문 발행인 조지프 퓰리처였다. 퓰리처는 `더 월드`라는 신문을 통해 모금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하는 칼럼을 썼다. 그의 칼럼이 게재된 후 모금 운동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1885년 받침대가 완성됐다.

높이 46m, 총무게 225t에 달하는 거대한 동상은 완성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운반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상을 300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누었고, 기차로 프랑스의 항구 도시 루앙으로 운반했다. 루앙에서 현재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리버티섬까지는 프랑스 군함으로 옮겨 왔다. 리버티섬으로 옮겨 온 자유의 여신상은 원래 모습으로 조립돼, 1886년 10월 28일 성대한 동상 제막식 행사에서 공개됐다. 높이가 47m인 받침대 위에 46m 높이의 동상이 세워져 전체 높이는 93m에 이른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무척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다. 우선 오른손에 든 횃불은 자유의 빛(`계몽의 빛`으로도 불림)을 상징한다. 왼손에 든 사각형 책자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상징한 것으로 앞면에 `1776년 7월 4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왕관에 달린 7개의 가시는 북극해· 남극해· 남대서양· 북대서양· 북태평양· 남태평양· 인도양 등 7개 바다와 전 세계의 대륙을 의미한다. 몸을 감싼 긴 옷은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로마 공화국을 상징한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신상은 쇠사슬을 발로 밟고 있는데 이는 노예제도 폐지를 의미한다.

생각 & 생각

▶초등

1.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2.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하기 위해 성금 모금에 기여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3. 자유의 여신상에서 각 부분이 상징하는 의미를 적어 보세요,

오른손 횃불:

왼손 책:

왕관:

로마시대 옷: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