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의 러시아 예술 기행`
랜덤하우스 刊, 1만원

올해로 등단 46주년을 맞은 시인 최하림(71)이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러시아를 여행한 기록을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으로 묶었다.

첫 번째 여행은 소설가 정길연·김이정을 비롯해 그의 아들, 딸, 그리고 시인의 아내 등이 함께했고, 두 번째 여행은 시인 이달희·김윤배·장석남, 소설가 정길연·임동헌, 화가 남궁도 등이 함께했다. 그리고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을 모두 김창진 교수(성공회대 정치학과)가 인솔했다. 이 책은 러시아 땅에 매혹된 많은 사람들의 여행기이자 시인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 찬사집이다.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은 2004년 첫 번째 러시아 방문기와 2006년 두 번째 러시아 방문기로 나눠 구성하고, 시인 최하림이 찾아다닌 도시와 마을을 그림자 밟듯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삶 자체가 시가 되고 여행 자체가 또 시가 되는 시인 최하림이 러시아 예술가들을 주인공으로 쓴 새로운 시집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하다. 독자들이 러시아 예술을 생생히 느끼고 새롭게 이해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둡고 칙칙하고 을씨년스러운 러시아에서 `검은 몽상`과 `검은 침묵`을 경험한 자만이 러시아의 대작가가 된다는 시인의 말은 매우 논리적이다. 고전이 되고 역사가 되는 예술의 근본을 찾아 떠난 곳이 시인에게는 러시아였고, 이 책에는 그 해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방향도 지형지세도 가늠할 수 없는 러시아의 스산함 속에서 시인 최하림은 도스토옙스키를, 톨스토이를, 릴케를, 푸시킨을, 체호프를 찾아다녔다. 예술가들의 집 앞에서 그들의 언어를 떠올렸고 무덤 앞에서 생애를 더듬었다. 멈춰 있는 시계와 펼쳐진 책장을 보며 그들이 마지막까지 불태웠던 예술혼을 느꼈다. 예술가들의 무덤을 방문한 시인 최하림은 러시아를 “어둡고 칙칙하고 을씨년스럽다” “검되 푸르렀다”고 표현했다.

시인 최하림이 예술가들의 집에서 떠올린 생각은 모두가 어둠이었고 고통이었으며 먼 구석이었다. 러시아 대지의 뻣뻣한 풀을 보고 “추운 지방이어선지 풀들이 억셌다”(p.93)고 한 시인의 말은 러시아에서의 차가운 삶을 이겨낸 예술가들의 뜨거운 혼을 빗댄 것이 아니었을까.

책은 한 편의 기나긴 시 같다. 시를 읊조리듯 천천히 시인 최하림의 발을 따라가다 보면 렘브란트를, 도스토옙스키를, 톨스토이를, 체호프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작가들의 탄생과 어린 시절과 죽음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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