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 `시삼백`
자음과 모음 刊, 336p(1)·344p(2)·336p(3) 각 권 1만2천원

“이제 이렇게 한번 가보자. 어떻게? 시의 한 양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 양식에 여러 가지 지향을 담아 그야말로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다 다른 얼굴로 비치되 작은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살아 생동하도록 그렇게….”

김지하 시인이 최근 몇 년의 시작 시작(詩作) 중 305편을 모아 `시삼백`(전 3권·자음과모음)을 냈다. 시집 제목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시경`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hommage)다.

실제로 김지하 시인은 “여러 해 전 공자가 당대 민초들의 찬가나 정치적 비판 시 이외에도 노래와 이야기와 교훈적인 시들을 엇섞어 `시삼백`의 백화제방을 `시경`으로 들어 올렸음이 당대 문예의 한 방향 제시였음을 기억해”내고, 경희대 홍용희 교수에게 “당신이 공자 노릇을 해라. 내가 민초 노릇을 하겠으니 한번 내 뒤죽박죽 시작들 속에서 시삼백을 건져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모두 305편이 정리됐고, 이들 중 2백여 편은 이야기(賦), 노래(興), 교훈적인 것(比), 풍자(諷), 초월적인 명상(神)의 다섯 가지 양식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무엇으로 갈래 짓기 힘든 나머지 100여편은 다시 `땡`, `똥`, `뚱`으로 이름 붙여 재구성 됐다. `땡`은 시인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별명으로 `중생시(衆生詩)`의 양식이고, `똥`은 좀 구린내 나는 상상력의 영역을, 그리고 `뚱`은 세상이 마음에 안 들거나 사는 데에 영 재미가 없는 차원을 지적하고 있다.

양식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시삼백`은 김지하 시인의 삶과 일상과 사상과 감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천태만상으로 녹아들어 있는 시집이다.

이러한 `천태만상` 자체가 김지하 시인이`시삼백`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묻고 응답하고 침묵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초월하고 웃고 놀리고 숨어들고 뛰쳐나가며, 어떤 땐 사소한 사물 하나가 어떤 땐 우주 전체가 시인이 되고 시인은 모든 것이 되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시인의 천태만상이니, 그것은 다양함 이상의 다른 무엇, 즉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 흐름은 시인의 평생에 걸친 사상적·예술적 탐구의 여정을 담고 있을 터, `시삼백`은 바로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시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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