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에 대한 가정법은 부질없는 짓이지만 2013년을 살고 있는 인물들은 오늘도 3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세경과 지훈이 부디 다른 선택을 했기를, 그래서 지금도 같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며, 슬픔은 차곡차곡 쌓이는 일상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서서히 무뎌진다. 또 `빵꾸똥꾸`는 웃음과 함께 지친 일상에 커다란 활력소가 됐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모두가 행복한 판타지란 없으며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는 넘어서기 힘든 현실이다. 식모는 식모고, 의사는 의사다.

MBC TV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 세경과 지훈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지난 19일 마무리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지훈이 이민을 떠나는 세경을 비가 쏟아지는 중에 차로 공항까지 데려다주다 그만 사고가 나면서 두 사람이 모두 죽는 내용이 그려졌다. 사고 자체도 비극적이었지만, 사고 직전 두 사람이 차 안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더욱 가슴 아팠다. 세경의 고백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숙연히 듣고 있던 지훈은 세경의 마지막 말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눈물을 머금은 표정으로 세경을 바라봤다. 이 장면에서 화면은 세경의 말처럼 정지되고, 이후 뉴스에서 사고소식이 전해진 뒤 3년 후로 시간이 뛰었다.

결국 엘리트 의사 지훈에 대한 산골 출신 식모 세경의 사랑은 죽어서야 이뤄진 셈. 제작진은 현실에서는 둘 사이의 엄청난 계급 차를 메울 방법이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범람하지만 이 시트콤은 현실은 냉정하다고, 꿈에서 깨어나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결말에 대해 네티즌들은 방송 직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한마디로 황당하고 실망스럽다는 것. 시트콤의 특성상 유쾌하고 밝게 끝낼 수 있는데 굳이 비극적인 결말을 택하는 이유가 뭐냐며 `지붕뚫고 하이킥`의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통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로써 김병욱 PD는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이어 또다시 비극적 결말을 택한 것이 됐다. 김 PD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종방연에서 마지막회를 취재진과 함께 본 뒤 “그렇게 시간이 정지된 것이다. 보시는 대로 이해해 달라”며 “뒤늦은 자각을 그리고 싶었다. 더 절절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짧게 언급했다.

20일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22.4%를 기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