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연의 순리를 보면서

※이번주부터는 김정호 동화작가(포항 두호남부초등교 교사)의`아동시와 이야기`를 30회에 걸쳐 싣습니다. 아동시와 이야기 코너는 동시가 나오기 까지의 배경이나 과정을 중심으로 쓴 글로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동시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농촌의 아이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그 속에서 함께 어울려 생활한다. 봄이 되면 버들강아지가 눈 뜨는 것을 보면서 머잖아 진달래, 개나리가 필 것을 알고 산기슭과 울타리를 기웃거린다.

아버지가 밭가는 것을 보면서 감자가 심길 것을 짐작하고, 논에 못자리 하는 것을 보면서 모내기 할 논을 둘러보게 된다.

밤이 깊도록 진달래가 핀 산에서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보리 풍년이 들 것을 짐작한다. 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정월 대보름날 소원을 빌면서 바라본 하늘에 달무리가 둥글게 그려졌으면 올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올 것이라 짐작하고, 붉고 밝은 달이면 가뭄이 들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학교를 오고가면서 산기슭에 연분홍으로 핀 개살구나무를 보면서 익을 때를 기다리고 하얗게 핀 돌배나무를 보면서 가을을 기다리게 된다. 초여름이 되면서 먹게 되는 과일이 앵두이다. 잎이 무성하여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꽃이 피었을 때 잘 봐두어야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앵두를 맛볼 수 있다.

농촌에 살면서 과일들이 한꺼번에 익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초여름 앵두를 시작으로 한 여름에는 살구, 복숭아, 자두가 익어서 즐겁게 한다. 이런 과일이 싫증이 날만하면 포도가 등장하고 이어서 사과와 배가 기다린다. 뒤질세라 밤과 단감이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하면 대추가 빨갛게 익어서 가을바람에 흔들거린다. 그러다 보면 서리가 내리는데 남은 것은 감이다. 잎이 떨어진 나무에 서리를 맞아가면서 추위에 온몸이 말갛도록 남아서 대롱거리는 것이 감이다.

대추나무가 뒷밭에서 익어간다.

늘 그러려니 하였는데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대추는 높은 곳 위에 있는 것부터 익어간다. 꼭대기에 있는 것부터 붉게 익어간다. 옥수수, 벼는 먼저 핀 아래에 있는 것부터 익어 가는데 대추는 다르다.

다른 곡식에 비하여 대추나무는 높다. 그래서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가을을 먼저 보았을지 모른다. 위에 달린 대추들이. 그래서 먼저 익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높은 곳에서 먼저 알고 붉게 대추를 익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농촌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어야 관찰하고 찾아낼 수 있는 소재를 잡았다. 익는 과일을 보면서도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다. 벼나 수수는 익으면서 점점 고개를 숙이는 것이나, 과일들이 커가면서 팔이 아프도록 무거운 것을 들고 버티는 모습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된다. 대추가 익어가고 있다. 한꺼번에 익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붉어지고 있다. 달콤한 맛이 가을바람이나 햇빛을 받아서 더 진해지고 있다.

대추나무

경북 봉화 법전중앙 6 금**

벼도

옥수수도

밑에서부터 익는데

대추는

위에서부터 익는다.

너른 밭에

외롭게 높이 서서

가을이 오는 것을

먼저 봤을까?

가을바람 지나갈 때

높이 서서

가을바람을

먼저 잡았을까?

위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붉게 익는 대추나무.

< 소년동아일보 1980. 10 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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