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색·선홍색` 피 색깔 소화·호흡기계 구분
폐암·기관지확장증·기관지염 등 다양한 원인
다량의 객혈… 질식으로 사망하는 응급사태 발생

김수성 교수(동국대 경주병원 흉부외과)
김수성 교수(동국대 경주병원 흉부외과)

어떤 경우든 인체의 내부에서 순환해야 할 피가 우리 눈에 보이게 되면 기분도 좋지 않고 또 긴장하며 걱정되게 마련이다. 어느 날 아침 목에 가래가 있어 뱉어 냈더니 피가 묻어 나왔다면 적지 않게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가래에 피가 묻어 나와 병원을 찾는 경우는 임상에서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이다.

기도(호흡기계)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객혈이라 하는데 아주 작게는 가래침에 피가 묻어 나오는 정도에서부터 과거 결핵이 약물로 치료되기 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너무 많은 출혈이 있어 호흡을 유지하지 못하고 질식하여 사망에 이를 정도로 많은 양의 객혈에 이르기까지 나오는 정도도 다양하고 또 그 원인도 많다.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면 우선 그 피가 정말 기도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식도를 포함한 소화기계에서 나온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종적인 결론은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야만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본인 스스로도 피의 색깔을 보면 어느 정도 감별할 수가 있다.

소화기계에서 나온 피는 대체로 위산의 영향으로 검붉은 색을 띠게 되는 반면 호흡기계에서 나온 피는 보통 선홍색이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폐암 발생률이 현저하게 증가하였고 폐암이 사망의 중요한 원인이 되면서 폐암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면 반사적으로 `폐암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객혈이 폐암의 주된 증상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호흡기계에서 출혈할 수 있는 질환은 참으로 많고 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관지염도 비슷한 빈도의 원인이 되며 우리나라에 많은 결핵이나 기관지확장증도 객혈의 주요한 원인에 속하므로 속단하여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객혈이 발생하면 물론 병원을 찾아 확실한 원인을 알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의사로서도 감별진단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또 환자 입장에서 보면 쓸 데 없는 걱정을 덜게 하는 것이 주의 깊은 환자의 병력 청취이다.

병력이란 환자가 가지고 있는 증상의 이력인 셈인데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올 때에도 감별진단에 크게 도움 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한두 달 정도 가래가 많은 기침을 했는데 어느 날 피가 섞여 나왔다면 만성기관지염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열과 오한을 동반한 객혈은 폐렴에 의할 경우가 많으며, 특히 악취가 나는 객담과 함께 피가 섞여 나왔다면 폐농양일 가능성이 많고, 오랫동안 다량의 객담과 함께 기침을 했던 사람이 객혈을 보이면 기관지확장증일 경우가 많다. 정작 무서운 폐암은 아무런 증상이 없고 기침도 잘 생각해 보니 잔기침을 좀 했던 것 같은 정도인데 가래에 피가 나왔다면 생각해 보아야 할 질환이다.

객혈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이미 언급한 호흡기계의 질환 외에도 심장을 포함한 순환기계 질환이나 혈액응고 이상 또는 전신성 질환에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객혈=폐암`이라고 생각하여 미리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 자세한 검사를 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원인에 따라서는 다량의 객혈로 인해 질식하여 사망에 이르는 응급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면 먼저 안정을 취한 후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다만 비교적 흔하며 생명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질환도 객혈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면 필요 이상의 긴장과 걱정은 덜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