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 정부부처 분할로 이루어져선 안됩니다”

경북 포항 출신의 한나라당 이춘식(58·비례대표) 의원은 이명박 정권 탄생의 숨은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는 외부의 비선 조직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고, 대선 본선에서는 특보단 부단장 역할을 수행했다. 이 의원은 포항중학교, 대구 사대부고, 연세대를 졸업하고 지난 81년 민정당 공채 1기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뒤 당의 조직국장, 청년국장, 재정국장 등을 역임해 정치권에서 발이 넓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는 정무부시장까지 지냈다. 이 의원을 만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국회의원으로서 포부 등을 들어 봤다.

<편집자주>

어릴적 훌륭한 사람 꿈꾸며 공무원 결심

1981년 민정당 공채1기로 당료생활 시작

이 대통령 서울시장 선거서 본격적 인연

봉사하며 소리없이 세상을 변화시키고파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태생은 영천인데, 어릴 때 선친을 따라 포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포항 시내에 살면서 중앙초등학교와 포항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포항중학교 8년 선배가 되지요.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고향은 `포항제철소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포항`입니다. 포스코 덕분에 고향 사람들의 생활은 나아졌지만, 그 대신 불순물 하나 없이 맑은 은빛 바다가 추억속으로 사라졌고, 그 많던 형산강의 물고기도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송도바닷가의 송림에서 소나무 숲을 헤치고 술래잡기 하던 일, 고향의 젖줄인 형산강에서 조개를 캐던 일 등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구서 지낸 학창시절은 어땠습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대구로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큰 도시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그냥 `범생이`소리는 듣기 싫어서 초·중·고 동기 동창들과 어울리면서 큰 도시 아이들의 텃세를 이겨내고 많은 친구와 폭넓게 어울리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지금도 서울에 사는 고교 동기들은 분기별로 정기모임을 갖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학창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때는 그냥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습니다. 공무원이 되는 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어린 시절의 포항은 전쟁통에 폭격 맞은 집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을 시절입니다. 말 그대로 밥 먹고 살기가 어려웠고, 보리죽을 제대로 못 먹을 지경이었으니 꿈도 그리 크게 꾸지 못했다고 해야겠죠.

-대학 졸업후 곧바로 정당인으로 입문했는데 이유가 있으신지.

△고교 졸업후 서울로 와서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2월 민정당 사무처 요원 공채 1기시험을 거쳐 당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직업에 대한 생각은 자기 발전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함께 감안해 선택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가 아니라 당 사무처에서 공직이나 국영기업같은 곳에 우선적으로 보내주는 제도가 있었기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꼭 국회의원이 되겠다거나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나라를 바로잡는 데 목숨을 걸겠다는 생각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중에는 작은 힘이나마 나라 발전과 국민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스스로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당에서는 민정당 경리부장·총무국 부국장·청년국 부국장, 민자당 경리실장·청년국장·조직국장·서울강동갑 지구당 위원장을 거치면서 총선에서 낙선하는 아픔을 맛보는 등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1992년도 민자당 국회의원을 할 때 저는 민자당 조직국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고향어른이 국회의원이 됐기에 인사를 했는 데, 포항중학교 선배여서 자주 만나게 됐죠. 그러다가 1995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로 정원식 총리와 경선에 나섰을 때 제가 서울 강동구 지구당 위원장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일을 돕게 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고향 어른으로서 교류만 한 것이고,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그때부터라고 해야겠죠. 그때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경선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1998년도에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려다가 선거법 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참모로서 같이 일하게 된 것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인데, 2001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같이 일했습니다.

-주로 어떤 역할을 맡았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정책이라든가 홍보전략 등 큰 줄기에 대해서는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홍보전략 같은 것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내 세부 실무나 당헌 당규나 당내 여러 가지 시스템이라든가 하는 것은 생소하니까 제가 도왔죠.

-세종시 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세종시 수정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충정으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수정안대로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국회에서 적극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가보면 부처를 분할한 나라는 독일밖에 없습니다. 입법부와 사법부를 갈라 놓은 경우는 있지만 정부부처를 분할한 경우는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정부가 일을 하면 한 부처만 일하는 게 아닙니다. 독일은 통일을 하면서 본에 있는 정부부처를 베를린으로 옮기다 보니 본의 정치인들이 난리를 치며 반대를 하는 바람에 분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사람들은 한국은 절대 정부를 가르지 마라고 합니다.

독일은 국가적으로 통일이라는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된 것이지만 한국은 통일이 된 것도 아니고, 균형발전이란 목적은 다른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데, 굳이 정부부처 분할로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갈라놓으면 다시 못 합친다는 점을 감안해서도 세종시는 수정안대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독일도 시민단체 교수 일반 지식인은 다 합치자고 하는 데, 정치인들이 말을 못 꺼집어낸다고 합니다. 말만 하면 본의 유권자들이 들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왜 가만 있는 정부부처를 가르려고 하냐는 것이 독일사람들의 얘기입니다.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좋아하는 말이라면 고교 시절 탐독했던 논어의안연편에 나오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구절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삽니다. 또 성경에 나오는 말 가운데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란 말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시대적인 과제`를 선의라고 할 때 이 선의를 지혜와 용기로써 헤쳐나가자는 것을 개인적인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얘기 가운데 플라톤이 `지혜·용기·정의·절제`라는 4가지 수단을 통해 선을 달성하자고 했다고 하는 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최고의 덕목인 선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혜·용기만 꼽았는 데, 플라톤은 두 가지를 더 넣은 게 다른 점이죠.

-정치인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향상되고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쪽으로 노력하고 싶습니다. 또 분단한국에서의 과제라 할 수 있는 남북관계, 남북통일 등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협만을 하는 정상회담을 않겠다고 합니다.

과거에 경협만 갖고 했는 데. 이것은 만남을 위한 만남이라는 얘기죠. 실제적인 현안인 핵문제를 의제로 삼아 당사자인 북한과 남한이 의논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고, 북한은 미국이 당사자라고 하는 데 우리는 우리가 당사자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북한이 마음을 바꾸면 경협이 가능할 것이고, (태도를) 안 바꾸면 (경협은) 어렵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공직자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라는 철학으로 소리 없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있는 데, 어떻게 된 겁니까?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서 행정경험을 했기 때문에 경기도지사로서 나서 볼 생각이 있습니다. 다만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그럴 생각입니다만 현재로서는 김 지사가 나올 것 같습니다.

당내 김영선·남경필·원유철 의원 등도 김 지사가 출마하지 않으면 나올 생각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저도 8년째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있으니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현 지사도 경북출신이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기도가 글로벌화(?)됐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고향인 포항에는 자주 들리시는지.

△자주 들리지는 못합니다. 포항에는 큰 집에 사촌 큰 형님이 있고, 그외 고종사촌들이 사는 등 친인척이 많습니다. 포항 청하에 본관인 경북 영천이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대구·경북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항의 경우 포항제철이 있어서 조금 낫긴 하지만, 대구·경북이 낙후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장과 첨단산업이 많이 가야 하는 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대구·경북이 더욱 발전하고 활기찬 지역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적극 나서서 지원할 생각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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