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진행 연장 결정은 청취자의 몫
20년간 지각도 펑크도 내본적 없어
한국가요 발전에 좋은 영향 줬을듯

“20년이 어떻게 갔는지를 모르겠네요.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20년이 훌쩍 지나갔어요.”

한 프로그램을 20년간 진행한 소감에 대해 배철수(57)는 이렇게 말했다.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오후 6시)가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1990년 3월19일 처음 전파를 탄 이래 다른 팝 음악 프로그램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동안에도 꿋꿋이 버텨 어느덧 20세가 된 것이다.

8일 열린 `배철수의 음악캠프` 20주년 간담회에서 배철수는 “20년간 너무 행복하게 방송을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혼자서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까지 가끔 한다”며 “그런데 내가 초년고생이 좀 심했기 때문에 그 대가라고 내 자신에게 얘기한다”며 웃었다. 그는 얼마나 더 진행할 것 같냐는 질문에 “아주 냉정하게 얘기하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사퇴할 수는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뚜렷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며 “그것은 청취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청취자들이 내 방송을 계속 듣기를 원하시면 계속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철수는 20년장수 비결로 `철들지 않음`을 들었다.

“제 데뷔곡이 `세상모르고 살았노라`였는데, 그래서인지 계속 철없이 살고 있어요. `딴따라`는 철들면 안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음악,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가 철들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전 요즘도 제 또래들보다는 20~30대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방송 20주년을 기념해 `레전드-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과 기념 서적을 냈다.

배철수는 “내가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스타일인데 20주년 맞으면서 일이 커졌다. `야, 이쯤에서 은퇴해줘야 진짜 멋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사실은 지금 그만둬도 `호상(好喪)`이라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선정한 음반에 대해 “중학교 1학년 때 `실드 위드 어 키스(Sealed with a kiss)`를 듣고 처음으로 내 마음이 움직였다. 그 이후로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해왔다”며 “음반을 골라서 내는 것에 대해 고민도 했지만 내가 평생 음악을 한 것을 생각하면 음반 100장 선정한다고 해서 누가 크게 야단치거나 욕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음반 선정 기준은 평론가와 대중의 눈높이 중간지점으로 택했다고 밝힌 그는 각 음반마다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선정 이유를 달았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코멘터리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했어요. 이 책이 팝 마니아한테는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제 코멘터리를 보고 한번 피식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난 20년에 대해 매일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즐거운 생각만 갖고 진행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제가 정한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일단 내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나가는 음악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음반회사 친구들이 미는 음악이라고 틀어 준 적도 없습니다. 제가 들어보고 좋으면 틀어줬습니다. 또 1년 365일 항상 그렇지는 못했지만, 360일 정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앉아있었던 것 같아요. 내세울 게 있다면 공부 못하는 애들이 지각 안 하듯, 저도 우등상은 못 받지만 개근상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0년간 한 번도 지각하거나 펑크낸 적은 없습니다.”

“전 제 프로가 한국 가요 발전에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방송을 했습니다. 일반 청취자도 많이 듣지만, 제 프로는 음악 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이 듣습니다. 그 친구들도 `음악 캠프`를 듣고 있으면 세계 음악계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군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