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출신의 홍동현 한국장학재단 감사는 군위군 효령면 고곡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삼덕초등학교, 대구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민정당 사무처 공채 5기로 들어와 한나라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과 청년국장, 조직국장, 그리고 한나라당 대구시당 사무처장과 경북도당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대선때는 이명박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경북지역을 맡아 뛰었으며, 지난 해 5월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를 운용하는 한국장학재단 감사로 취임했다. 홍 감사의 학창시절부터 당료시절 추억, 그리고 한국장학재단에서 하는 일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세상은 여의도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는데 이곳으로 와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 몸담아 재단의 조기 안정화에 기여하면서 약 3조원을 학자금 대출 및 장학금으로 지원한 것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홍 감사가 지난해 5월부터 근무하고 있는 한국장학재단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 경험이 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신년 국정연설에서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신념입니다”라고 밝힌 뒤 `국가장학사업 강화`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설립된 곳이 바로 한국장학재단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대변하는 곳이어서인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이 이사장을 맡았고, 홍 감사가 감사로서 신설조직의 인사나 조직 구성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뛰고 있다.

이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돼 당초 1학기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국회의 법안처리 지연으로 올해 2학기부터 실시될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업무를 이곳에서 맡게 된다.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입니까.

▲저는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질은 없었지만. 재능이 있었다면 화가를 하고 싶었어요. 화가가 어렵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문학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교시절과 대학때는 시도 쓰고, 소설도 써서 기고하곤 했죠. 그렇지만 문학도 그리 큰 소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당료생활을 오래 했는 데,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민정당 사무처 공채 5기로 들어가 임명장을받은 것이 지난 1983년도 3월12일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난 2006년 11월 정년퇴임할 때까지 24년간 근무했습니다. 당 생활을 하면서 잊지못하는 게 김동길 교수의 강의입니다. 민정당 사무처에 근무할 때 우리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했지만, 당은 그리 큰 지지를 받지 못해 고민이 많을 때였습니다. 1985년의 일로 기억되는 데, 그 때 들은 김동길 교수의 강의는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제 월급이 21만4천원일 때 강사료 200만원짜리 강의였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당 지도부는 권익현 대표, 이한동 사무총장, 이종찬 원내총무였습니다. 김 교수는 지도부가 참석한 강의에서 “내가 민정당에 강의를 하러 간다니까 주변에서 말리더라. 그러나 나는 기똥찬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고 왔다. 민정당이 집권하려면 대통령 직선제를 받도록 해라.”이렇게 일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런게 강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교수는 2시간 내내 “다시 집권하려면 직선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강의가 바로 6·29선언의 기초가 됐고, 배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올곧고, 소신있는 강연이나 강의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있습니다. 그때의 감격과 충격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당료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가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회창 총재의 마지막 선거때 조직국장으로 일했는 데, 패배후 심리적 충격으로 6개월간 TV를 못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미국프로레슬링 경기중계를 보기를 권해서 레슬링 팬이 될 정도였습니다. 또 이명박 서울시장 선거를 한나라당 청년국장으로 있을 때 치르고 난 뒤의 얘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대선전에 1심을 거쳐 대선후에도 재판을 받으러 다녀야했습니다. 당에서 전국대학의 정치학과 학생들을 초청해 당 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관례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운영했는 데, 이게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돼 결국 벌금 80만원을 받았습니다.

홍 감사는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구시당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다가 17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공천에 떨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이때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아내도 직장이었던 한국국제교류재단에 휴직서를 내고 대구로 내려와 뛰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왔지만 경선조차 못해보고 공천경쟁에서 떨어 졌기 때문이었다. 홍 감사는 “그때 모든 게 무너지는 듯 했다”고 술회했다.

그 후 그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아내와 함께 한 달여 전국의 사찰을 돌며 108배를 하며 마음을 추스렸다고 한다.

-한국장학재단 감사로 취임해 처음 일해 본 소감은.

▲감사로 오고 난 뒤 약 3개월간 공부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업무자체가 금융분야여서 모르는 것이 많아 틈만나면 물었고, 감사팀 식구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지난 해 여름이 지나기까지 돌아다니지 않고 공부를 하고 나니 다소 업무에 대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도 경제동향 같은 전문적인 분야는 어렵지만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감사란 제도가 이래서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당에도 감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감사는 조직의 소금이며, 소금이 짜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습니다.

-재단에 와서 느낀 애로사항이 있다면.

▲한국장학재단에서 지난 해 대출신청을 받을 때 4층 콜센터에서 상담원 150명을 운용했는 데, 소화시킬 수 있는 상담전화가 1만2천통 정도입니다. 문제는 전화가 많이 오는 날은 76만통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전화고 인터넷이고 모두 불통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정도 상담전화를 물리적으로 소화하려면 2만명의 상담원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운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700명 정도까지 늘려서 운영하려 합니다. 신설 조직이어서 인력충원부터 조직구성까지 일거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 대해 소개를 해 주신다면.

▲재단은 국가장학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맞춤형 학자금 지원체제를 구축해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지와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지난 해 5월7일 설립됐습니다. 주요사업은 크게 장학금 지원사업과 학자금 대출사업으로 나뉘는 데, 지난 해에는 학자금 대출 68만건에 2조5천억원을 지원했고, 저소득층 및 우수학생대상 장학사업으로 12만명, 4천317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올해에는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 시행으로 대출나갈 것이 107만명에게 9조4천억원을 대출할 예정입니다. 아직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에 대한 법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준비를 하고 있으며,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직접 대출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일은 일대로 엄청나게 하고도, 욕은 욕대로 얻어먹는 상황입니다. 직원은 현재 110명에서 80명 늘려 190명 정도인 데, 계속 충원할 예정입니다.

-재단에서 대출해주는 자금의 이율은 어떻습니까.

▲대출학생의 부모소득에 따라 대출이율이 다르게 적용됩니다. 건보와 협의해 소득몇 분위인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됩니다. 현재로는 1~3분위 0%, 4~5분위 1.5%, 6~7분위 4.3%, 8~10분위 5.8%로 총 평균 연 이율 2.9%로 돼 있습니다. 지난 해 1학기에도 주택금융공사 대출이율 7.3%를 직접대출로 바꿔 5.8%로 낮춰 1.5% 이자율을 할인해 대출했습니다.

-장학재단에 있으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재단관계자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경제원조를 받는 수원국 150개국에서 6만 4천명 정도가 유학을 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여건이 열악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한 장학업무를 빨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품격을 올릴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올해 1학기부터 장학사업에 시범적으로 하려합니다. 장학재단 명의의 서초동에 있는 건물수익금으로 재원을 충당하려 합니다.

-대구와 경북지역 경제회생을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지방의원 등이 젊어져야 하고, 젊은 시각에서 지역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얻기위해 공동연구, 공동마케팅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역량도 모아야겠죠. 특히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탄소배출권 거래소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고, 진행중인 첨단의료복합단지도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대구와 경북경제가 회생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산책과 등산이 취미이자 건강관리법이기도 합니다. 주위를 돌아보게 하고, 무수히 쌓여있는 생각의 구슬을 하나하나 꿸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평일에도 만보기를 착용하고, 걷기에 힘쓰며, 매일 기록을 확인할 정도입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선거 출마 등 정치권에 대한 미련이 아직 많을 것 같은 데요.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동참하겠으나, 우선은 몸담고 있는 장학재단의 업무에 충실히 임하고 싶습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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