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한 마리로 시작한 연상놀이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면 분리수거함 옆, 자동차 밑에 숨어 있던 들고양이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곤 한다. 뚜껑이 덮여 있어 끼니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언제나 고양이는 쓰레기통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본 고양이는 한쪽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다친 지 오래인지 무덤덤한 절뚝거림이 도리어 연민을 자아냈다. 서러운 듯 영민한 그 눈빛이 잔상처럼 어리어 카스테라빵을 들고 다시 내려가 봤다. 고양이는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밤 `버려진 고양이, 다친 고양이, 길고양이 키우기` 등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염을 앓는다는 핑계 때문에 집에 들여 키울 수는 없지만, 어릴 적 고양이와 쌓은 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검색 놀이는 급기야 일본의 `고양이 빌딩`까지 미쳤다. 고양이들이 사는 아파트인가 싶었는데, 그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빌딩 이름이란다. 책이 좋아 생업까지 포기한 채 책을 모으고, 읽고, 쓰기만 한다는 다카시의 책방 건물이었다. 자신만의 책 빌딩을 갖고 있다는 것에 찬사와 부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은 모으는 것보다 잘 버리는 것이 좋다` 쪽이기 때문에 책 많은 그가 부럽진 않다. 물론 많이 읽고, 잘 쓰는 그가 존경스럽긴 하지만.

정작 내가 부러운 이는 따로 있었다. 세노 갓파였다. 세상에! 책 빌딩 외관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를 그린이가 세노 갓파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책벌레 친구를 위해 그 프로젝트를 수행했단다. `방심할 수 없는 검은 고양이`의 눈빛을 그리기 위해 고심했다는 갓파의 필치를 보면서 몇 년 전에 만난 그의 책 한 권을 떠올렸다.

내게 세노 갓파는 길에서 만난 작가였다. 언젠가 대구행 버스 옆자리 아가씨가 세노 갓파를 읽고 있었다. 상세 그림이 곁들인 가로가 긴 듯한 특이한 장정의 책이었다. 섬세한 그림에다 손수 쓴 듯한 글씨는 훔쳐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림 잘 그리는 작가의 에세이라고 답해준 아가씨는 친절하게도 그 책을 훑어볼 기회까지 주었다. `펜 끝으로 훔쳐 본 세상`(서해문집·1999)이란 책이었는데, 어감에서 오는 강열한 포스 때문에 `갓파`라는 작가 이름도 금방 기억할 수 있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머가 있되 가볍지 않고, 세밀하나 아프게 찔러대지는 않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성과 감성이 적절히 배합된 그 책에 감질 맛을 느꼈다. 당장 수첩에다 작가와 책 제목을 적었다. 꼭 사서 꼼꼼하게 읽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잊거나 귀찮아하는 동안 여기까지 왔다.

그날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세노 갓파에 대한 내 관심은 더 미뤄졌을 것이다. 당장 `펜 끝으로 훔쳐 본 세상`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는 순간 기대는 무너졌다. 품절이란 빨간 글씨가 뜬다. 품절- 물건이 다 팔리고 없다, 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재출간 될 수도 있다는 뜻인가? 출판사의 자발적 철회를 의미하는 절판이 아니니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혼란을 가다듬고 인터넷 중고서점을 쏘다녔다. 절판된 책 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갓파의 다른 책을 검색해본다. 오호라, `소년`이란 책이 보인다. 역시 그림 곁들인 책이라 구미가 당긴다. 오랜 세월 간판장이로 현장을 누린 그가 쓰고 그렸다는 이 자전 소설로라도 내 관심을 대신해야겠다. 혹, 그대들이여, 세노 갓파의 `펜 끝으로 훔쳐 본 세상`을 보거든 연락 좀 주시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갓파, 또 다른 운명의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아참, 그날 이후로 뵈지 않는 그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품절 책 소식만큼이나 궁금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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