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천 포항제일교회 부목사
미국의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의 재임시 있었던 일이다. 조지 윌슨(George Wilson)이라는 사람이 우편물을 훔치는 사람을 발견하여 권총으로 쏴 죽였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우편물을 훔치는 강도를 쏘았기 때문에 정상이 참작되어 잭슨 대통령은 그에게 무죄석방의 특별사면장을 내렸다. 그런데 윌슨은 그것을 거부했었다. 대통령이 사면장을 내렸는데 사형수가 받기를 거부하자 그 문제가 대법원까지 상정되어 수석판사인 요한 마샬(John Marshall)이 유명한 판결을 내렸었다. “사면장은 하나의 종이쪽지이지만 그 가치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거절한다면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지 윌슨은 처형을 당해야 한다.” 조지 윌슨은 분명히 용서를 받았지만 사면장을 거부함으로 인해 사형 당하고 만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처한 입장이 바로 그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법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전 인류의 죄악을 용서해 주셨다. 우리의 죄는 사면되었다. 오늘날 성경은 인류를 향하여 “너희 죄는 용서받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면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용서가 왔으나 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죄로 인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면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사람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요한1서 4장10절을 보면, 사랑을 아는 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그러면서 연이어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1절)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과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언제나 병행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혼의 날개는 용서하고 용서받는 삶을 통해서 자란다. 용서하면 언덕 너머의 에덴이 내 마음의 정원이 되는 것이다. 내 자신을 향한 용서의 문이 열릴 때 비로소 축복의 문도 열리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자신(自信)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용서도 쉬워진다. 내 자신을 그토록 용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자신에 대해 편협함과 비겁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 하다. 내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긍정적으로 내 자신을 사랑하는 표적인 것이다. 용서는 쉽지 않기에 용서할 때 평범함(ordinary)은 비범함(extraordinary)으로 변하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과거로부터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된 삶의 첫 출발점인 것이다.

내 자신에 대해 각자의 마음속에 두 가지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분노에 가득 차 오직 학대하고 증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고 용서하려는 것이다. 내 자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