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고시로 국회 입문… 대구·경북 도울 일 마다않아”

경산 진량출신의 이권우(48)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전문위원은 대구 영신고와 서울대 인문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뒤 입법고시 9회(1988년)로 국회 사무처에 들어와 21년간 국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위원은 근무기간 동안 법제처와 국정원 파견근무도 자원했고, 지난 1999년에는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 연수도 다녀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있을 때는 대구·경북 예산확보에 힘을 보태 대구·경북공무원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래서 그런지 국회내에서도 이 위원은 대구·경북통으로 불린다. 이 위원을 만나 어린 시절의 추억, 국회 전문위원으로서 지낸 이야기, 보건복지위의 현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고향에서 학교 다닐 때 얘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는 경산의 대구대학교 주변에 있는 부림초등학교를 다녔는 데, 한 학년에 2개반인 작은 학교였습니다. 졸업때 한반에 70명으로 3반이었던 학교입니다. 세월이 흘러 인근에 대구대학이 들어오고, 진량공단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인구가 늘어나 학급수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 학년에 6개반으로 늘어났다고 해요. 매년 참석치는 못하지만 격년으로 한번씩 5월에 열리는 체육대회에 가곤 하는 데, 모교가 커지는 걸 보면 반갑기만 합니다.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때 부터 꿈은 행정가라고 적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고향마을은 초등학교 5학년때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외진 시골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하양 무학중학교를 다닐 때 당시 관보인 서울신문을 무척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행정가는 되지 못했지만 국정을 두루두루 살필 기회는 있었던 셈입니다. 국회 상임위에서 조사관과 심의관을 거쳐 전문위원이 됐고, 그 과정에서 16개 상임위중 6개 상임위를 거쳤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행정가가 되면 이런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취미나 특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중학교는 교내활동, 주로 웅변대회에 나가거나 독서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공부는 그리 신경안썼습니다. 다만 웅변대회에는 많이 출전하고, 출전하면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웅변을 통해 다소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내성적이던 제 성격이 사회성이 좋은 성격으로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입법고시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사실 입법고시에 특별히 관심 있었다기 보다는 서울대 독어독문과를 다니면서 고시공부를 했습니다.입법고시는 행정고시 가운데 일반행정 부문과 과목이 비슷했어요. 당시 저는 외무·행정고시 양쪽을 하려는 욕심을 부렸는 데, 비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던 입법고시에 먼저 합격을 해 공직을 시작하게 된겁니다.

흔히 국회라고 하면 `금배지`단 국회의원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국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바로 국회 사무처와 입법조사처, 그리고 예산정책처 직원들이다. 국회가 입법부로서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나라의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입법지원조직의 핵심은 바로 국회 사무처이다. 의원들의 입법,예산 결산심사 등의 활동지원과 행정사무처리를 위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사무처는 상임위별로 나뉘며,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입법, 예산 결산심사 등에 대해 검토보고서와 소위 심사자료 작성 등을 담당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국회 전문위원은 어떤 일을 합니까.

▲전문위원은 국회 상임위에 법안과 예산에 대해 `검토보고`를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전문위원은 검토보고로 말한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법안 소위 심사자료`는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는 데, 이것을 전문위원이 만들게 됩니다. 다만 검토보고는 전문위원 혼자 만들지만, 소위 심사자료는 정부와의 합작품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정부 부처와 다른 기관, 특히 찬성과 반대하는 단체의 입장을 모두 분석 설명한 뒤 전문위원의 의견을 기재해 소위심사자료를 만듭니다. 이때 각각의 의견을 미리 조율을 해 놓고, 수용하지 않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심사자료를 만드는 게 키포인트입니다. 이게 잘 안되면 계속 질문이 나오고, 전문위원이나 차관에게 질문·답변이 이어지면 그 법안은 통과가 잘 안되게 돼있습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소개하신다면

▲국민실생활과 가장 가까운 상임위원회입니다. 정부부처 증 보건복지가족부와 식품의약안전청을 담당하는 위원회로서 소속 위원은 한나라당 의원 14명, 민주당 7명, 비교섭단체 2명 등 23명입니다. 위원장은 선진과 창조의 모임 소속 변웅전 의원이 맡고 있죠. 위원 구성의 특색은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여성의원들이 10명이나 있고, 의사, 약사, 변호사, 교수, 간호사 등 전문직 출신 의원이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또 신체 장애를 가진 의원도 6명이나 있습니다.

직원으로는 수석전문위원을 비롯해 모두 17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는 800여건의 법안이 상정돼 있는 데, 16개 상임위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저도 400여건의 법안을 맡고 있는 데, 조사관들은 한사람당 100건씩 맡고 있을 정도입니다.

-국회 사무처 요원으로서, 전문위원으로서 일해오면서 보람있게 생각하는 일을 소개한다면.

▲1998년도의 일로 기억되는 데, 과장때 법제처 파견을 마치고 외통위 근무를 할 때입니다. 외교부에서 해외이주법 개정안이 넘어왔는 데, 검토해 보니까 미비점이 많아 조사관으로서 대폭 수정하는 검토의견을 냈습니다. 그 결과 법에 이주알선업체들의 횡포도 많고해서 이주하는 분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많이 넣었죠. 이런 때 가장 보람이 큽니다

-국회 전문위원으로서 일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여야간 마찰의 소지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경우에는 곤혹스런 경우도 있죠. 그러나 이럴 때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또 이런 경우에도 여야가 서로 좋은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시에 제시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현안은 무엇인지.

▲영리병원 허용문제가 현안입니다. 기재부에서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데, 보건복지부는 방어하는 입장입니다. 이 문제는 의료의 공공성과 산업성·경제성이 충돌하는 사안인 데, 적절히 조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는 복지부만으로는 결코 풀 수 없으며, 대통령이 진두지휘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제가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데, 박사논문도 저출산대책에 대해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구와 경북지역 예산에도 신경을 많이 써 지역 공무원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습니다.

▲지역 공무원들이 제 방을 자주 찾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향지역의 예산 확보에 대해서는 애정을 갖고 도우려 애썼던 걸좋게 보신 것 같습니다. 특정지역에 예산을 더 주자는 방향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예산배정을 시정하는 측면에서 예산처를 설득하곤 했죠. 실제 사례를 들자면 지난 2008년 예산편성때 대구와 경산 갓바위도로를 연결하는 도로 사업이 경산쪽에는 예산이 확보돼 공사를 다 해놨는 데, 대구쪽이 안돼서 도로를 쓸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예산집행이 있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예산이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다 완공이 됐을 것입니다. 또 지난해 경북의 독도관리선 예산 증액에도 적극 나서 돕기도 했습니다.

-여러 모임을 많이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

▲국회 들어온 직후인 89년도에 `21세기 정치경제연구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국회에만 근무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질 것 같아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10여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20년이 지난 지금은 70명으로 늘었습니다. 회원 가운데는 공직자 가운데 판·검사, 고위공무원, 의사, 코미디언 등 각 분야의 다양한 회원이 가입돼 있습니다. 21세기가 된 후 이름을 `팍스 코리아나 21`로 바꿨습니다. 법제처 파견때도 대경포럼을 만들어 활동했으나, 지금은 해체됐고, 최근에는 경산 출신 70여명이 모이는 모임의 간사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음악회도 주관했다고요.

▲지난 9월 영신고 재경동문회장 자격으로 서울 국민대 강당에서 고교 동문가족과 장애인들이가을밤의 정취를 나누고,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장애인 야학 교장으로 일하는 박경석 동문에게 후원금도 거둬 전달해 장애우를 지원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고향분들에게 인사말을 하신다면.

▲고향분들을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공무원 생활이 끝나고 나면,또 다른 인생에서는 고향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회 전문위원으로서 고향에 도움이 되고, 나라 전체에도 도움이 될 수 방법을 계속해 찾아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앞뒤가 막힌 공무원이 되지 않고, 열린 사고로 소신을 가진 전문위원으로 열심히 봉사할 생각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