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거슬러 불교의 숨결속으로…
천년을 거슬러 불교의 숨결속으로…
  • 이용선기자
  • 등록일 2009.11.19 21:42
  • 게재일 2009.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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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를 마무리 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의 마지막 순서로 신라유적 가운데 경주 남산의 유적이다.

남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동서로 가로 지른 길이가 약 4km, 남북의 거리는 약 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되어 있으며,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 최소 120여 곳의 절터와 60여 구의 불상, 60여기의 불탑이 산재해 있고, 지금도 불교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어 산 전체가 불교문화의 보고이자 야외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구름에 내려앉은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뒤쪽으로 5분여 오르면 몇 사람 정도 겨우 설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앞쪽에 암벽이 있는데 이 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보살상이 새겼다.

이 보살상은 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듯이 만들어 졌는데, 일반적인 연꽃대좌가 아닌 구름대좌에 앉아 있어서 그러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 서면 보살상을 만든 신라 시대 사람들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데, 이 구름대좌와 보살상을 등지고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었다. 힘든 산행 후에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은 잠시나마 모든 시름을 잊게 해 준다.

주위의 풍광이 이러하니 그 시대의 이름 모를 조각가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보살상을 만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었을 것이다. 보살상의 머리에는 삼면두식(三面頭飾)의 보관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관음보살로 추정하고 있다.

두 어깨 위에는 연꽃송이로 장식된 수발(垂髮)이 덮여있는데 이는 다른 상에서는 볼 수 없는 예이다. 보살상의 앉은 자세는 유희좌(遊戱坐)로서 아주 편안하게 앉은 자세이다. 신체적인 양감이 강조된 조각기법과 섬세한 세부 표현, 장식성의 경향이 돋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웅장함이 느껴지는 `상선암 마애여래좌상`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조각한 불상을 말한다.

마애불은 양질의 화강암 자연 바위 면을 이용하여 대부분 규모가 큰 작품이 많고,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있어 신비감과 경건함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많이 유행하였다.

상선암 마애여래좌상은 남산에서 가장 큰 좌상이라는 점도 시선을 끌지만, 머리 부분을 광배에서 돌출되게 고부조(高浮彫)로 새기고 몸체와 대좌의 옷 주름과 손, 발 등은 선각으로 처리한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조각기법은 마애불의 경우 바위가 수직으로 서 있지 않고 뒤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어 상체와 하체를 동일한 부조로 조각할 경우 예배 자의 위치에서 올려다보면 불상이 뒤로 기울어지게 보이므로 착시현상을 고려한 조각기법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조각기법은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수많은 마애불을 조성하면서 생긴 풍부한 경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바위 전체가 몸체로 느껴져 큰 얼굴과 조화를 이루어 안정감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불신(佛身)을 얕게 돋을새김한 후 바깥 면을 떼어내지 않고 남겨 둠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서려있고,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가 나지막하고 큰 귀는 어깨까지 닿아 있으며 짧은 목에 삼도가 없다.



1천년 기운서린 `용장사지 삼층석탑`



용장사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천여 년동안 계승되었던 사찰로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용장골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용장사를 감싸고 뻗은 봉우리의 암반 위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이 트이고 전망이 좋은 산봉우리에 건립된 석탑 가운데 대표적인 석탑이다.

큰 암반의 상면을 쪼아낸 뒤 지대석을 놓고, 단층의 기단 위에 세운 높이 4.5m의 3층 석탑으로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상륜부는 모두 멸실되고 없으며, 3층 옥개석 정상부에 원형의 찰주공이 마련되어 있다. 이 석탑도 무너져 있던 것을 1924년에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원하였다. 양식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가탑의 계통이나, 하층기단이 없고 직접 암반 위에다 상층기단을 세운 점이 다른 점으로 8세기에 만들어진 삼륜대좌불이나 마애여래좌상 보다는 늦은 시기인 9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기 = 겁없이 문화재에 대한 답사기를 시작하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확한 사료에 근거를 두고 글을 써야 하는 어려움으로 인한 후회와 우리 문화유산을 알아간다는 보람이 교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문화재답사 초년병의 글을 보고 지적과 격려로 관심을 보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답사기를 끝냅니다. 감사합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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