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포항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만이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평소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공부해라” “일찍 들어오너라.” “너는 왜 못하니” 등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공감이 없으면 자녀들의 말에는 잔소리 내지는 간섭으로 들릴 뿐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탁월한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것을 조화롭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학의 이야기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준다.

“어느 날 여우는 이웃에 사는 학을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하지만 학은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왜냐하면 평평한 접시에 음식이 담겨 나와서 학의 뾰족한 부리로는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난 후 이번에는 학이 여우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학은 여우에게 당했던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목이 긴 병에 음식을 내놓았다.

여우는 학과 반대로 부리가 없기 때문에 목이 긴 병에 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러나 학은 여유 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너무 맛있으니 어서 먹으라고 여우를 약을 올렸다.

여우는 학이 자신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학이 말했다. “친구야, 지난번에 네가 나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했을 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해서 오늘 그 답례를 한 거란다. 오늘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다 네가 뿌린 씨니까 네가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니?”

이 우화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하는 행동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무엇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사랑은 쌍방통행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모른다. 사랑이 간섭되면 피곤할 뿐이다. 여우와 학이 서로를 초청했으면 서로가 잘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이나 그릇을 배려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여우와 학은 깨어진 인간의 군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학과 여우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봐야 한다.

둘째는 사람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학이 여우한테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면서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네가 뿌린 씨니까 네가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니?”하는 말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밝혀주고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면 다음부터는 아예 그런 사람하고 상종을 하지 않든지, 아니면 복수를 하든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택한다. 그러나 학은 여우를 불러서 똑같은 방식으로 초대하여 여우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면서 말미에 사과와 함께 네가 뿌린 씨라고 충고를 해준다. 이 충고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는 여우와 학의 우화를 통해 손님 위주의 배려하는 마음과 그 손님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최근 인사 청문회나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여야 의원들이 좀 더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면서 질의를 해야 하는데 마치 죄인을 다루듯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정치가 여우와 학의 우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생각은`다양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역행하는 길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보스정치를 떠나 개인의 창의력과 개인의 신념이 존중되는 정치풍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나누려는 이분법적 태도는 위험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느 쪽이 보다 인간적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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