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여기 있다. 붉은 벽을 배경으로, 검고 긴 어깨머리를 한 여자. 황소 눈망울을 한 여자의 시선은 오른쪽이다. 오른 뺨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은 가늘고, 얼굴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황량하다. 짐짓 생각에 잠긴 듯한 여자, 실은 상처받았다. 그녀는 따귀 맞은 제 영혼을 그렇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쓴 `따귀 맞은 영혼`(궁리, 2002)의 표지 인물이다. 원 그림 제목은 `생각에 잠긴 여인`이라지만 어쩌면 그녀도 제 깊은 상처 때문에 생각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영혼이 따귀 맞았으니 얼마나 아플까? 놀란 여자의 눈망울과 황망한 표정이 절묘하리만치 이해가 된다.

누군가 나를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자존감 다친 그 부위에 생채기가 난다. 불안정, 무력감, 분노감에 이어 자기불신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마음 상한 상태에서 우리는 상대에게 완강히 고개 돌려버린다. 이 책은 그 아픈 마음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치유서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따귀를 맞는다. `마음상함`으로 번역된 이 주제는 `과거`의 심리 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욕구나 감정, 상처 등이 현재와 부딪치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상함`은 누구나 겪는데, 가까운 사람일 때 그 상처가 크고 깊다는 사실에 공감이 간다.

이 책에서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마음상함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는 `투사`라는 개념과, 자기 안에 남의 말을 그대로 담아 내 탓으로 돌리는 `내사`라는 개념에 관해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긴 자기반성이 이 리뷰를 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필름과 화면은 다르다. 필름이 실체라면 화면은 필름이 만들어낸 현상 즉, 투사일 뿐이다. 예를 들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 얼굴이 굳어 있고 하품까지 한다. 단지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뿐인데, 우리는 친구가 화가 났거나 나를 거부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그 현상을 친구 탓으로 돌리는 일이다.

내사 또한 마찬가지다. 네 노래는 들어줄 수가 없어. 정색하고 던진 노래 잘 하는 친구의 한마디에 우리는 노래방이라는 간판만 봐도 알레르기가 생긴다. 그게 굳어져 어느새 자신은 노래 못하는 인간이란 굴레를 스스로 씌워 버린다. 사소한 오해가 투사를 거치면서 커다란 갈등이 되고, 작은 말 한마디가 내사를 만들어 심각한 자기연민에 이르게 한다.

이처럼 남 탓과 내 탓만 극복해도 마음상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투사와 내사는 실체가 아니라 허상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주는 자극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면 상처를 쉽게 피해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마음상함에서 벗어나는 작가의 충고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음 상한 타인과의 관계를 끊기보다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타인에게 고백하는 것이 우선이란다. 이때의 고백은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라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줄 몰랐다고 딴전을 피우거나 상대를 재공격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다음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섣불리 예전처럼 돌아가겠다고 서두르다 보면 관계 회복에 실패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정과 직접 대면하는 연습을 한다. 다시 말하면 투사와 내사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사물에 대해 과거와 다른 시각을 가져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마음상함의 해결점 또한 내 마음 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유를 가지고 마음 한 자락 열어 놓을 때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상처로 온밤을 지새운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마음상함은 결국 내 안에서 시작해 내 안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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