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배요 아배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배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삿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리고개

아배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손이믄

아배 소원 풀어들이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

여보게 만술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

亡靈도 感應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이남호 편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박목월 시인이 53세 때 펴낸 시집 `慶上道의 가랑잎`(민중서관,1968)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녹아있는 명편(名篇)들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뭐락카노”로 시작되는, 아우의 죽음을 애가 터지게 부른 `이별가`와 `만술아비의 축문`은 단연 돋보이는 수작(秀作)이다. 이 노래의 무대는 만술아비가 펼쳐놓은 아버지 제사상 앞이다. 일자무식이요, 찢어지게 가난한 만술아비가 아버지의 제삿상에 경사도 사투리 입말로 올리는 축문(祝文) 아닌 축문과 그 축문에 감응하여 죽은 아버지(亡靈)가 내리는 말씀이 전체 시의 내용이다. 이 제사상은 등잔불과 축문, 간고등어 한손도 없이 소금에 밥이나마 눌러눌러 담은 것이지만 `만술아비의 축문`의 간절한 말씀으로 그 어떤 제삿상보다도 정성스럽고 푸지다. 그렇다. 죽은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승과 저승 그 어디에도 사람의 정성(人情)이 제일로 소중하다. 부모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다 모셔두고 있음이다.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물질보다도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내게 남은 세상을 걸어갈 일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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