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시인의 새 시집`거룩한 낭비`가 6년 만에 출간됐다. 목회자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으로 우주와 소통하고 거기 충만해 있는 생명의 흐름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그려낸 64편의 시가 귀하다. 특이하게도`거룩한 낭비` 표제시가 두 편이 나오는데, 모두 하느님이 주인공이다.“적설 30cm, 때아닌/폭설에 갇혀 모처럼 쉬다//그렇게 맥 놓고 쉬는데,/또 난분분 난분분 뜨는/창밖의 잔눈송이들 보며/詩情에 드니 모처럼 시다//오늘따라 낭비를 즐기시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흰 눈썹을 낭비하고,/흰 섬광의 시를 낭비하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내리는 족족 쌓이는 족족 공손히 받아 모시는/겨울나무들처럼//나 두 팔 벌려 하느님의 격정을 받아 모 신다/받아 모시니,//시다!”(`거룩한 낭비`전문)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그의 시를 “이십여 년 전 거칠고 황막한 `빈 들`에서 시작된 고진하의 고독하고도 가난한 시작(詩作)은 자연 사물에 편재적으로 깃들인 신성(神聖)을 찾아가는 형이상학적 탐색 과정으로 심화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결핍된 신성과 생명에 대한 외경을 통해 사물 속에 충일하게 번져 있는 `거룩한 것(the sacred)`의 형상을 노래해 온 것”이라 평하고 있다. 사물과 인간, 하늘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범우주적 언어로 노래하는 고진하의 시들이 더 많은 독자들의 가슴속으로 자리하기를, 그리하여 반생명적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닦고 눈가를 적셔주기를.

/이종암(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