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의 박물관대학에서 다닌 1년여의 답사 기간동안 우리 지역을 제외한 곳의 단체 답사는 세 차례가 있었다. 그중 한번이 지난 회에 종합적으로 소개했던 고구려 유적답사를 갔던 해외 답사였고, 두 번은 거리가 멀어 개인적인 답사가 쉽지 않은 전라도, 충청도 지역의 백제 유적 답사였다.

답사기 연재 막을 내리면서 갖는 총정리 두 번째로 오늘은 백제 유적 가운데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고,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백제인의 흔적가운데 몇 가지를 다시 한 번 소개 하려한다.

장인의 숨결 살아 숨 쉬는 `금동대향로`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문화와 백제 장인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유적으로 그 가치도 이동이 가능한 문화유산 가운데에는 최고라 해도 되는 유적이다.

백제금동대향로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다른 곳에 전시되기 위해 이동을 할 때는 보험금만도 400억 원에 이른다니 이러저러한 설명보다도 그 엄청난 보험금만으로도 그 가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는 높이 61.8cm, 몸통 최대지름 19cm, 무게 11.85kg으로 규모와 섬세함에서 다른 향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작으로 백제인이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였다. 용을 형상화한 받침과 연꽃잎으로 표현된 몸체, 그리고 여러 겹의 산이 묘사된 뚜껑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뚜껑과 몸체, 받침이 각각 따로 구리합금으로 주조되어 금으로 도금되었다. 봉래산 모양의 뚜껑 곳곳에 10개, 그리고 봉황의 턱 밑 가슴까지 이어지는 2개 등 총 12개의 구멍을 뚫어 놓아서 향로 안에서 피어 오른 향연기가 봉우리 곳곳을 감싸며 마침내 봉황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도록 되어 있어서 신선세계를 표현하는 최고의 연출기술을 보이고 있으며, 용 모양 받침과 연꽃모양의 몸체가 서로 분리되어 재를 버리고 또한 향을 새로 담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어서 기능적인 면에서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독립적이고 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찬란한 백제문화의 상징 `무령왕릉`

공주시 금성동에 소재하고 있는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령왕릉과 1~6호분 등 총 7기의 고분이 남아있다. 실제 왕릉은 관리와 보존의 문제로 지금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실물크기로 재현시킨 무령왕릉 내부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삼국시대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밝혀진 무령왕릉은 백제 제 25대 무령왕과 왕비가 합장된 무덤으로 1971년에 5호분과 6호분 침수방지 작업 도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은 지하에 땅을 파고 그 안에 벽돌로 바닥과 벽면, 천장을 축조한 벽돌무덤이다.

무덤 칸의 규모는 동서 너비 272cm, 남북 길이 420cm, 높이 314cm로,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벽면은 벽돌을 뉘어쌓고 그 위에 1단을 세워쌓는 4평1수(四平一竪)의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동벽과 서벽에는 등잔을 놓아두었던 등감(燈龕)이 각각 2개씩 마련되어 있으며, 북벽에도 1개의 등감이 있다. 등감 아래에는 창문 시설의 흔적이 1개씩 남아있고, 남벽 중앙에는 널길이 마련되어 있다.

무덤 안에서는 108종 2천906점에 달하는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어 찬란한 백제문화의 진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국 남조(南朝) 및 왜(倭)와의 국제 교류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출토된 지석에 새겨진 무령왕의 사망 연대는 `삼국사기` 기사의 정확성을 말해주고 있어 `삼국사기`의 사료적 가치를 높여 주었다.

자비로운 인상 스며든 `서산마애삼존불상`

일명 `백제의 미소`로 더욱 유명한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의 층암절벽에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의 높이는 2.8m이다. 연꽃대좌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여래상의 미소가 바로 유명한 `백제의 미소`이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높이가 1.7m이다. 얼굴이 여래상처럼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 반가상의 높이는 1.66m이고, 이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살짝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삼존불상에 반가상이 조각된 것은 이례적인 것인데, 아마도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도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감각과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하면서도 온화한 인상 등으로 미루어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마애불상이 그렇듯이 서산마애삼존불상 역시 햇볕이 비추이는 시간에 보는 입체적인 느낌과 그렇지 않은 시간에 보는 느낌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곳을 찾을 때는 날씨와 그 계절에 맞는 시간대를 해당기관에 확인하고 찾아가는 것이 좋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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