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하루 버스에 흔들리며

동해로 갔다.

선을 보러가는 길에

날리는 머리카락.

청하(淸河)라는 마을에 천희(千姬)

뭍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인간사(人間事).

지금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

칠빛 머리카락이 설레는 밤바다에는 피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금도 유월 바람에 날리는 나의 자발(自髮)에 천희가 헤엄친다.

인연의 수심(水深) 속에 흔들리는 해초(海草) 잎사귀.

이남호 편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포항에는 비록 한자어이지만 곱고 정겨운 지명(地名)들이 많다. 청하(淸河), 송라(松蘿), 흥해(興海), 연일(延日) 이런 지명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면 금방 해맑은 산과 바다, 해의 이미지가 출렁출렁 떠오른다. 이런 곳에는 으레 애틋한 낭만도 서려있을 것만 같다. 오래 전, 경주에 살고 있던 박목월 시인이 기계와 흥해를 지나 청하로 맞선을 보러 간 모양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인연은 맺어지지 않았고, 훗날 백발의 시인이 머리카락이 젖은 인어 이미지의 천희(千姬)라는 그 여자를 떠올리고 있다. 노년의 시인이 밤바다에 피리 소리가 들리고, 해초 잎사귀 헤치며 천희가 헤엄치고 있는 환상(幻像)에 젖는 것은 어쩌면 청하(淸河)라는 지명에서 기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 시에서 푸른빛 서정을 자아내는데 가장 핵심적인 시어는 `아직도`와 `지금도`라는 두 단어다. 이 두 단어가 푸른빛의 애틋한 서정의 물살을 꽉 물고 있다. 훗날 송라(松蘿), 라고 불러보면 백발의 내 머릿결에는 무슨 그림이 펼쳐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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