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

돌담 위

軟枾로 익다

한쪽 볼

서리에 묻고

깊은 잠 자다

눈 오는 어느 날

깨어나

제상 아래

심지 머금은

종발로 빛나다

박용래 시전집`먼 바다`

(창작과비평사,1984)

지금쯤 내 고향 청도에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감나무에 감이 등불처럼 붉게 익어가겠다. 순수 서정과 눈물의 시인 박용래의 시 `연시`를 다시 읽는다, 그는`먼 바다`라는 한 권의 시전집을 남겨놓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충청도의 후배 시인인 이면우는 그의 시집을 얼마나 읽었는지 시집 겉표지를 수십 번 바꿔 붙인 것을 내게 보여준 적 있다.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후배 시인들에게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도 드물 것이다. `땡볕→연시→종발`로 이어지는 시상 전개에 군더더기 하나 없다. 그리고 그가 남긴 시편들은 후배 시인들의 가슴에 빛나는`종발`로 남아 오래도록 빛나고 있다. 그 종발은 곧 별일 터인데, 시인 박용래라는 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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