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용포철고 3
작년,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1년 반이 지난 2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일요일을 포함해서 겨우 삼 일을 쉬고 다시 학교에 나가야 하는 방학 아닌 방학이어서 나는 집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하지만 나는 그 중의 하루를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 들어 와서 공부에 매달리는 틈틈이 읽은 책 중에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있었는데 그 책 속의 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펼치는 봉사활동이 참으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가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이런저런 모습을 살필 겨를도 없이 그저 공부에만 매달려 온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고, 그래서 방학 중의 하루를 이용해서 나도 한 번 그런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아버지의 소개로 하양에 있는 `천혜요양원`에 전화를 해서 자원봉사활동 신청을 하고, 며칠 뒤 일요일 마침내 나는 아버지와 함께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천혜요양원으로 출발했다. 차 속에서 나는 `중증 지체 및 지적장애를 가진 그 분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요양원은 `청구재활원`과 같은 울타리 속에 나란히 있는 곳이었다. 정문 앞 뜰에 나와 있던 식구(이곳에서는 여기에서 치료 요양 중인 분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차에서 내리는 나와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1층 사무실에 들러 안내 사항 및 주의 사항을 듣고 식구 분들을 만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마련된 통로를 따라 식구 분들의 생활공간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섯 개의 방과 목욕탕이 거실을 중심으로 연결된 구조인데 일반 아파트의 구조와 흡사해서 처음 오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낯설지가 않았다.

1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까지의 남자들 40분이 함께 생활하는 이곳에서 나의 첫 일과는 목욕봉사였다.

첫 번째 방 식구들부터 옷을 벗고 차례대로 목욕탕으로 들어오면 욕조에 미리 받아둔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신 다음 때수건으로 몸을 닦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 순서로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은 두 발이 펴지지 않는 분도 있고 팔이나 허리가 굽어서 목욕탕에 들어오는 것조차 힘들고 어려운 분도 많아서 목욕시켜 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적 장애와 지체장애를 같이 겪고 있는 분들도 많았고 대화가 잘 되지 않으니 더 세심하게 살펴서 씻겨드려야 하는데 서투른 나 때문에 시간만 자꾸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처음 보는 나와 아버지를 낯가림해서 뜻 모를 소리를 계속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그분들의 손을 꼭 잡고 한 분씩 한 분씩 비누칠도 하고 면도도 하고 샴푸도 하면서 정성껏 닦아 드렸다.

그분들의 말을 내가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눈치껏 말대꾸도 하고 간단한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목욕봉사가 모두 끝나고 나니 내 옷은 물론 아버지의 옷도 물과 땀에 젖어 있고 손등과 발목 부분에는 비누 때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손과 발을 씻으면서 아버지가 `힘들지?`라고 물으셨을 때 나는 얼떨결에 괜찮다고 대답을 했지만 나는 사실 마음이 상당히 들떠 있었고 흥분된 상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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