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 가는 곳에도

나의 책은 우표 붙이고 간다

책갈피 첫머리

저편 이의 이름을 쓰곤

시린 손을 잠시 댄다

가서 안부 전하고

호젓이 그 옆에 오래 머물라고

그가 외로울 땐

그 더욱 옆에 꼭 있으라고

마음 깊은 당부도

안 보이게 함께 간다

김남조 시집`영혼과 가슴`(새미, 2004)

시의 도입부에서 말하고 있는, 나는 못 가지만 내 책은 우표를 붙이고 가는 그곳은 어디를 두고 말함인가? 원로 시인 김남조 선생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말하는가, 아니면 삶의 저편(저승)을 말하는가. 거듭 시를 읽어보니 `우편물`이 도착할 곳은 아무래도 후자 쪽인 것만 같다. 그리고 수신자는 먼저 이승을 버리고 저편으로 건너간 시인의 남편이 아닐까 싶다. 저편 그리운 이의 이름을 쓴 그 위에 시린 손을 잠시 대는 화자의 간절한 바람(사랑)이 애절하다. 우편물인 나의 책에다가 가서 안부 전하고 그가 외로울 땐 그 더욱 옆에 꼭 있으라는 마음의 깊은 당부가 독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그 더욱”, “꼭”이라는 시어에 화자의 간절함이 잘 묻어있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지역에서 함께 시작(詩作) 활동을 해온 선배 시인 김정구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을 전해 받았다. 그 때는 얼마나 막막하던지, 고인(故人)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생전처럼 검은 얼굴로 가을의 쓸쓸한 노래를 또 부르고 있을까? 찬바람 불어오니 형님의 부재(不在)가 더욱 분명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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