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오용과 외면이 아쉽다는 지적이 사회 각 분야에서 쏟아진 가운데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임하는 안동 지역에서마저 외국어가 남발되고 있어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한글이 곧 우리의 `정신`이자 `문화`라는데 이의를 달 수 없다면, 안동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외국어사용 기관단체 이름과 문구 등은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안동시 정하동 택지개발 당시 발견된 조선시대 원이엄마의 편지와 미투리.

450년 전 남녀의 애절하고 순수한 사랑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지만, 이후 정하동 들머리에 조성된 원이엄마상의 받침돌에는 `아가페`라는 국적불명의 말이 새겨졌다. 시민들은 `사랑`이나 `그리움` 등 우리말이 아로새겨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금까지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안동의 대표적 특산품인 안동포의 생산과정과 상품종류 등을 전시하는 안동시 임하면의 전시관은 `안동포타운`으로 이름 붙었다. 이 역시 `안동포마을`이나 `고을` 등을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일이다.

안동 시내 웅부공원의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이름 역시 이질감을 주며, 와룡면 동악골 일대 농촌체험마을은 `안동농촌테마파크`로 불리면서 `팜 스테이`를 상품으로 내걸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연이어 선정된 탈춤축제의 정식명칭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다.

안동 지역의 명물인 안동댐으로 가는 진입로에는 수자원공사의 영어명칭인 `K-water`가 곳곳에 붙었고, 이 도로와 평행선으로 놓인 중앙선 철길에는 철도공사 대신 `KORAIL`이 시민과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이외에도 외국어를 갖다 붙인 사례는 일일이 늘어놓기가 어려울 만큼 많아 한글외면의 세태를 뼈아프게 느낄 수 있다.

시민들은 지역의 세계화 및 외국인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 어느 정도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정신문화를 내세우는 안동만큼은 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서보월 교수는 “뿌리 깊은 정신문화를 자랑하는 안동 역시 한글외면과 영어남용 세태를 피해가지 못했다”며 “한국적인 이름과 내용으로도 얼마든지 세계적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앞으로 명칭 등에 대한 당사자 측의 진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임태기자 lee7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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