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역사·문화 연구는 포항의 정신문화, 즉 포항의 역사·문화의 뿌리를 규명, 포항의 정체성을 정립해 유구한 포항의 역사문화를 떳떳하게 선양할 수 있는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앙양하기 위해서 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끌어 간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포항 미래의 밝은 역사는 포항을 사랑할 수 있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 시민들만이 이끌어 간다는 가르침입니다."

22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포항대학 캠퍼스성실관 203호에 자리잡은 연구실에서 향토사학자 배용일(68·사진) 포항대학 초빙교수를 만났다.

`일월(日月)정신`을 `포항정신`으로 최초로 주장한 그는 냉철한 `역사학자`라기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맏형`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포항시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문화행정과 시민의식 확대, 기관단체 간 융합교육 강화 등에 밴 자신의 철학을 힘주어 강조했다.

1941년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포항고, 고려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박은식과 신채호 사상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고향인 포항에 정착해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포항향토사 연구로 포항의 정체성을 정립해 이를 대내외에 알리고 시민의 역사·문화의식을 고양시키며 시정발전을 위한 여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포항의 선진화에 앞장서 왔다.

1980년 포항시 민방위강사가 되어 국민정신교육분야를 강의할 때 포항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그는 그러던 중 1984년 `포항시사` 자료를 모으면서 `포항의 정체성 찾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1987년 시작된 `포항시사`와 `영일군사`등 포항향토사와 관련한 저술 활동(7권)뿐 만 아니라 `포항지역 정신문화의 전통성과 현대적 발전방안`등 일반 논문도 수십편 저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면서 2005 포항시민상 수상, 경북도문화재도록 편집위원, 포항시사 편집위원장, 포항정신문화연구회 부위원장 등의 활동을 통해 향토사를 정립하는 데 앞장서 왔다.

포항의 정신을 정립하는 데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연오랑 세오녀`설화를 연구해 지난해는 이를 `연오랑 세오녀 신화`로 주장하면서 이를 포항문화의 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포항정신의 고향이며 포항문화의 원류로 주장하고 있다.

문화 행정·시민의식 확대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앞장

`연오랑 세오녀`의 일월정신… 영일만 발전의 원동력

“깊고 폭넓은 연구로 후학의 길 밝게 열어주고 싶어”

연오랑세오녀의 일월사상과 정신은 한국 선사문화의 원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족오태양숭배사상과 건국이념인 천손사상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출현 이후 일월(태양)은 인간 신앙 최고의 숭배대상이었습니다. 일월은 온누리를 밝히는, 모든 생명을 생동케하고 이롭게 하는 광명정대(光明正大)사상의 주체로서 홍익·풍요·희망·용기·정열·개척·화합의 진취적 삶을 이루게 하는 최고의 정신적 가치를 생성하는 실체입니다. 연오랑세오녀 일월정신은 영일만 포항의 천혜적 지리환경과 유구한 역사적 특성을 함축하며 포항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광명정대의 일월정신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를 비롯하여 해맞이의 성지, 국토방위의 호국정신, 포은 정몽주와 농고 최세윤의 충절정신, 제민창 포항창진 설치와 포항 5도의 개척정신, 동학사상의 요람, 학도의용군의 자유·민주 수호정신, 포스코의 영일만신화 창출, 새마을운동 의 산실, 대통령을 배출한 위대한 포항정신으로 승화되어 왔습니다.”

그는 그동안 포항이 경주의 접경 배후지역으로 광북 후 현대에는 한국근대화의 핵심도시로서 국가 경제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오는 동안 포항은 포항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소홀해왔던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포항의 대학에 인문과 예술 계통의 학과가 전무한 결과까지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시민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포항문화원, 여성문화회관, 문화해설사 양성과정, 교사직무연수 등에서 `포항문화의 뿌리, 연오랑 세오녀 일월신화`라는 제목의 포항역사와 전통의 강의를 통해 향토에 대한 자긍심과 포항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확산시켰다.

“포항의 역사·문화 연구는 포항의 정신문화, 즉 포항의 역사·문화의 뿌리를 규명, 포항의 정체성을 정립해 유구한 포항의 역사문화를 떳떳하게 선양할 수 있는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앙양하기 위해서 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끌어 간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포항 미래의 밝은 역사는 포항을 사랑할 수 있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 시민들만이 이끌어 간다는 가르침입니다.”

포항을 `연오랑 세오녀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그의 열정은 또다시 불붙었다.

지난 5월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성리 도로개설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와 `사랑에 빠진것`이다.

최근 중성리 신라비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판명됐고 그는 포항시사 집필위원들과 함께 이 비문을 최초로 판독했다.

비문을 판독한 그는 발견된 비석의 서체와 내용이 국보인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비슷한 점으로 미뤄 제작시기를 6세기경으로 추정했다.

오는 10월 포항시와 한국고대사연구회가 주관하는 이 비석의 가치를 조명하는 학술대회에서 그는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발견경위와 고대의 포항과 흥해`라는 주제 발표를 한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비석의 발견 경위 보고와 그 발견 지역인 포항 흥해의 역사 및 고고학적 고찰에 이어 중성리비가 신라 금석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문의 어문학적 검토, 비문 내용과 건립연대, 비문의 서체와 고신라 문자생활과 같은 개별 발표와 이에 대한 개별 및 종합토론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고대 포항이 역사적으로 어떤 곳인지 재조명 하게 될 것 입니다. 특히 흥해의 발전 양상을 찾아보고 영일이 근기국 시대의 소국이었던 것에 비해 흥해는 그에 못지 않은 진한의 한 소국이었음을 유추해 볼 것 입니다.”

이런 `빡빡한`논문 활동에도 `정신문화`발전에 대한 진한 애정은 그의 가슴 한 켠에 여전히 깊이 남아있었다.

“포항의 정체성과 포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나 큰 사업은 정기적인 계획과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후손들을 위해 좋은 자리는 어느정도 남겨두는 지혜를 가질 때 앞날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도시문화 전반과 조화할 수 있는 가장 포항적인 문화유물로 세계화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무형의 정신문화운동은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자발적인 운동이 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이 꾸준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또한 나의 마지막 염원이자 앞으로 포항이 이루어야 할 가장 중차대한 다급한 일은 포항의 대학에 인문계통과 예술계통 학과를 개설하는 일입니다. 진정으로 포항이 21세기 문화시대에 세계 일류도시가 되는 것이 꿈과 희망이라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온 시민이 머리를 맞대어 고뇌해야 합니다. 포항문화의 정체적 전통을 잇고 계발해 나갈 인재를 키우는 일은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그동안 경제성장의 가치를 우선과제로 두고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묵묵히 지역의 역사·교육·문화 연구라는 한 우물을 고집해 시민들이 고장의 역사와 문화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 향토애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자랑스런 포항인`이자 `진정한 포항시민`이 아닐까.

“송구스러운 말씀일 따름입니다. 전혀 그런 생각하고 연구생활 한 것 아니며, 내가 포항을 위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 힘닿는데까지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보다 앞서 씨를 뿌린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광복후 대표적인 인사로는 교육의 하태환 선생님, 역사에 박일천 선생님, 문화에 이명석 선생님을 꼽을 수 있고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해오신 대표적 원로로서는 신상률 경북예총 회장님, 서상은 호미수회장님을 비롯해 여러 중진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분들이 밟던 길을 나의 전공을 살려 보다 깊고 폭넓게 가꾸어 후학들의 길을 더욱 밝게 열어주고 싶을 뿐 입니다 ”

이는 `지역 문화계에서 오늘의 포항정신문화를 발전시켜 놓은 전위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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