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 좀 더 관심 갖고 적극적인 태도 취해야”

포항출신의 이수광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는 약 30년째 독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경영학박사이자 공인회계사로서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회계법인인 안건회계법인을 창립해 회장까지 지낸 이 총재는 스킨스쿠버다이빙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수중탐험대를 창설해 현재도 대장을 맡고 있고, 서울대학교 해양연구소 여름 바다학교 교장도 맡고 있다.

지난 2001년 10월에는 독도중앙연맹을 창립해 총재로 봉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도 명예특별시장을 맡고있다. 이런 자연보호운동과 함께 나라 사랑에 대한 열정 때문에 최근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 한국위원회 수석부회장도 맡게 됐다. 이 총재를 만나 다채로운 이력에 얽힌 이야기와 에피소드, 그리고 독도 이야기 등을 들어봤다.<편집자주>

회계법인 회장으로 지내면서 시간·경제적 여유 생겨 사회봉사 시작

국내 최초 독도 해저지형 연구논문 발표… 독도 명예시민 운동 전개

-먼저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저는 포항시 북구 남빈동 412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죽도시장 앞쪽이어서 해변가 마을이었고, 송도해수욕장은 저의 놀이터였죠. 6·25때 대구로 피난 나오게 됐고, 대구 달성초등학교와 계성중학교를 거쳐 계성고를 다니다 서울로 전학해 선린상고와 건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공인회계사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대학교를 졸업한 뒤 신한제분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직장에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해 1968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 뒤 금성화섬이란 섬유회사에 다니다 1976년부터 공인회계사 개업을 했는데, 처음에는 아주회계법인 대표를 맡았다가 안건회계법인을 창립해 대표와 회장까지 지냈죠.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를 맡았는데, 처음 여기에 뛰어든 계기가 무엇입니까.

▲공인회계사로서 회계법인 대표와 회장을 지내면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었기에 사회봉사 차원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특히 스킨스쿠버 다이빙이란 자연친화적인 취미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보호운동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기도 했구요. 1977년 자연보호중앙연맹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해서 32년째 꾸준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것은 언제이며, 어떻게 배웠습니까.

▲처음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것은 대학 다닐 때니까 약 45년쯤 됐을 것 같네요. 그때는 잠수장비가 없어서 군 특수부대인 UDT에서 쓰던 장비가 나오면 그걸 갖고 어깨너머로 배웠죠. 어렸을 때부터 수영이 몸에 밴 상태였기에 남들보다는 쉬웠습니다. 그래서 동호인들을 모아 한국수중탐험대를 창설했고, 매년 여름에는 청소년 해양학교를 열어 학생들에게 수중탐험을 가르쳤습니다. 그게 1979년 무렵이었으니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만도 30년쯤 됐네요. 제게 스킨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사람이 1만명이 넘을 것입니다. 야간 수중 다이빙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방송국 카메라 기자들에게 수중촬영을 하는 것은 거의 제가 가르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MBC에서 방송용 ENG방수카메라를 처음 가져온 이후 수많은 방송국 사람들과 연예인들이 스킨스쿠버와 함께 수중촬영을 배웠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수중촬영 전문가가 많이 늘었습니다.(웃음)

-스킨스쿠버 다이빙 전문가로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 데, 소개해 주시죠.

▲건국대 상학과를 다닐 때 해양학술조사를 많이 다녔어요. 당시 거문도와 백도의 학술조사를 나갔을 때 얘기입니다. 백도 동굴 수중탐사를 하면서 랍스터가 많이 있길 래 채집을 하고 있는데, 상어가 나타났습니다. 바깥에 대 놓은 배에서는 비상이 걸렸죠. 모두들 정신없이 피하느라고 난리법석을 피웠는데, 다 피했다고 한숨 돌리고 보니 제가 아직도 나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상어에게 공격을 당한 것 아니냐`며 크게 걱정을 하고 있었나 봐요. 저는 랍스터 채집에 빠져서 상어가 나타난 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리 마을주민들에게 그곳에 가끔 상어가 나타나는 데, 망치 상어종류로서 사람을 공격하는 성향은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다 바닥에 가만히 앉아 상어를 관찰하다가 상어가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채집망까지 챙겨서 배로 귀환했습니다. 일행은 저의 침착, 대담무쌍한 행동에 탄복했고, 저는 그때 완전 영웅(?)이 됐죠.

-독도 학술조사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사연이 있습니까.

▲1981년쯤 독도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독도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1956년에 산악연맹 등반대가 낸 자료가 있었는데, 정작 바다에 대한 학술자료는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우리 땅인 데,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해 학술조사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당시 자연보호협회가 각계 전문가로 구성한 독도종합학술조사단을 구성했는데, 그때 수중탐험대장을 맡으면서 독도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때 조사단장은 서울대 홍순우 교수였는 데, 당시 조사 보고서로 제가 낸 논문이 `독도의 해저지형`입니다. 이게 국내 최초의 독도 해저지형에 대한 연구논문이어서 그 뒤로 여러 논문에 많이 인용됐죠. 1995년 제2차 울릉도 및 독도 자연실태 종합학술조사단이 구성됐는 데, 그때는 제가 부단장을 맡아 조사활동을 펼쳤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회에 걸친 독도의 동도, 울릉도에 대한 자연실태종합학술조사단에서는 제가 단장으로 조사단을 이끌었습니다. 독도처럼 영토분쟁의 가능성이 있는 땅은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앞으로도 독도에 대한 학술조사는 계속돼야 합니다.

-독도중앙연맹 총재이자 독도명예특별시장으로도 일하고 있는데, 사연을 소개하신다면.

▲독도 학술조사를 하고, 독도에 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 모임을 하다가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2001년쯤에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독사모)를 결성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툭하면 일본에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독도를 명예 특별시로 선포, 명예시민을 다수 등록해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국가차원에서 독도를 차지하기 위한 교묘하고 장기적인 포석을 놓고 있습니다.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으로 영역을 슬금슬금 넓히더니 독도 근처에서 어업을 하는 어민을 위해 독도에 의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의사를 허용하면 그다음에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병력을 파견한다는 얘기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독도에 살지는 않더라도 독도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독도의 명예시민이 되어 활동하는 방안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결국 2007년 1월1일 울릉군민회관에서 회원 200여명과 함께 독도 명예 특별시를 선포했습니다. 현재 특별시민으로 울릉도 주민을 포함해 1만5천명이 등록돼 있는 데, 목표는 100만명입니다. 언론에도 크게 떠들지 않고, 자연보호연맹과 함께 조용히 민간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명예 특별시로 선포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독도에 대한 실효적 점유를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독도 명예시민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독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독도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관광목적이든 학술목적이든 독도에 자주 감으로써 독도가 우리 땅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런 운동을 주도하면 당장 해결될 성질의 문제도 아닌데, 일본과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민간 차원에서 주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명예시민 확장운동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명예시민 목표가 100만명인 것은 100만명이 특별시가 되기 위한 최소 인구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등록할 때 명예시민에게 1만원씩의 등록비를 받고 있는데, 순수하게 십시일반 시민의 힘으로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미입니다. 독도 명예특별시민은 천연자원인 독도의 자연을 보호하는 운동과 독도에 대한 자료수집활동, 교양강좌, 간담회 개최 등을 통해 각종 문화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회원이 어느 정도 모이면 서울에 독도박물관을 짓고, 독도를 지킨 안용복 장군, 홍순칠 대장 등 33명의 동상도 건립할 예정입니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 박물관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사람들이 접근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피부로 느껴야 합니다. 동도와 서도의 교통로를 개설하는 것도 계획 중 하나입니다.

-끝으로 독도 지킴이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데, 바라는 게 있다면.

▲독도가 중요한 까닭은 섬 자체보다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바다영토 때문입니다. 다만 일본은 항상 독도에 관심을 보이며, 총선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 탈환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고, 자위대가 가상 독도 상륙훈련을 하는 등 국가차원에서 독도문제에 접근하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 측의 망언이 있을 때만 관심을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정부도 독도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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