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수도원 중 가장 오래된 역사 자랑
음악회·전시회·심포지엄 등 다채로운 행사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134-1번지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수도원장 이형우 아빠스).

한국 남자 수도원으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수도원이다.

수도원은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아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왜관수도원의 다양한 기념 행사와 함께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행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00주년 행사의 서막을 알리는 것은 11~12일 왜관수도원 새 성당에서 열리는 `역사 심포지엄`이다.

심포지엄에는 요한네스 마하 박사(독일 뷔르츠부룩 대학), 선지훈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조현범 박사(한국교회사연구소), 장정란 교수(가톨릭대) 등 10명의 발표자들이 참여해 한국 베네딕도회의 역사를 각 분야별로 연구 발표할 예정이다.

100주년 행사는 19~25일 `행사주간`을 통해 절정에 달한다. 첫 행사는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안셀름 그륀 신부 강연회`. 그륀 신부는 베네딕도회 영성의 세계적 대가로 많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서울(19·20일), 왜관(21일), 부산(22일) 4차례 강연을 한다.

20일부터는 `한국인 영혼의 한 부분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제목으로 겸재 정선의 화첩 전시회가 열린다.

성 베네딕도회는 지난 2005년 독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아빠스로부터 영구임대 방식으로 반환해 온 겸재 정선의 화첩을 공개한다. 전시에서는 정선의 화첩 원본과 영인본을 모두 공개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수도회의 중요한 사진 자료들과 수도자들의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10월11일까지 이어진다.

23일에는 국악과 교회음악, 현대음악을 통해 한국의 성 베네딕도회가 걸어온 100년 역사를 표현한 `100주년 기념 음악회`를 마련한다. 한국 베네딕도 수도원의 100년 역사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지평으로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는 취지에서 경북도립국악단, 베네딕도회 남녀 수도자들과 봉헌회원들, 가톨릭 심포니오케스트라와 성악가 등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다.

25일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미사에는 성 베네딕도회 총 연합 노트커 볼프 수석 아빠스와 20명의 총재 아빠스, 오딜리아 연합회 총재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아빠스 등 국내외 고위 성직자들과 사제, 수도자, 신자 등이 참석한다.이 밖에도 성 베네딕도회 총연합 세계 총재 아빠스 회의가 22~25일 열린다.

■왜관수도원 100년사

성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제8대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1908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을 직접 찾아와 유능한 가톨릭 교사 양성을 간곡히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수도원에서 파견된 선교사 2명은 1909년 2월25일 인천을 거쳐 서울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에 남자 수도원이 처음으로 진출한 것. 이들은 서울 백동(현 혜화동)에 정착해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교사 양성을 위해 `숭신사범학교`를, 선진 기술 전파를 위해 `숭공기술학교`를 세웠다. 숭공기술학교는 1920년까지 크게 발전했다.

정진석 추기경의 외할아버지도 기술학교 목공부 출신으로 가구 공장을 만들어 성공했다. 기술학교 출신들이 만든 대표적 작품이 바로 서울 명동대성당 강론대이다.

이후 함경도와 간도 등지로 관할지역이 넓어짐에 따라 1927년 서울 백동 수도원을 포기하고 원산 근처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겼다.

당시 덕원신학교는 한국 가톨릭의 유일한 인허가 신학교로서 지학순 주교, 김남수 주교, 윤공희 주교가 이곳 출신이다. 해방 후 소련군의 진입과 공산 정권 수립으로 1949년 5월 덕원 수도원은 강제 폐쇄됐다.

월남한 덕원수도원 한국인 수도자들이 1952년 6월 다시 세운 것이 바로 왜관 수도원. 왜관 순심학교, 김천 성의학교, 함창 상지학교 등을 인수받거나 설립했고, 음성 한센병 및 결핵 환우를 위해 상주성주 칠곡 왜관 등지에 정착촌을 운영했다.

가톨릭농민회의 전신인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세웠으며, 분도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사상서적을 세상에 소개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현장 기록물들을 입수,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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