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중산층 아파트, 백수와 다름없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 분)는 개소리에 괜히 예민해져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소리를 들어보고 천장에서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지만 개소리의 진원지를 알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평소대로 버려도 아무도 안 주워 갈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밖으로 나가 분리수거를 하고 터덜거리며 들어오던 중 바로 옆집 문 앞에 서 있는 강아지를 발견한다.

윤주는 그 개를 납치, 지하실로 뛰기 시작한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지하실에 가둬버리는 윤주. 한편 아파트 경비실엔 경리 직원 박현남(배두나 분)이 있다.

그날도 지루하게 낱말 맞추기나 하고 있는 현남에게 꼬마 슬기가 삔돌이를 찾는 전단을 가지고 온다.

온 동네에 전단을 붙이는 현남. 어쩌면 교수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안고 한잔한 윤주.

집에 돌아와 임신한 아내의 배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달려 나간 아파트 사방에 강아지 찾는 전단이 붙어있고 이렇게 써 있다. “특징: 성대수술로 짖지 못함”. 그러나 지하실의 강아지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주인이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의 강아지임을 알게 된 윤주는 호시탐탐 그 개를 노린다.

점점 늘어가는 강아지 실종사건. 사건이 마구 번져 가는 듯 보이던 어느 날, 친구 뚱녀에게 들은 현남은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건너편 옥상에서 한 사내가 개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용감한 시민상을 타서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우리의 현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뚱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사내를 쫓기 시작하는데….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일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본업보다 의문의 빨간 양동이(?)에 집착하면서 때로는 빗자루를 들고 골프 스윙 연습을 하거나, 지하실 러닝머신으로 건강에 신경 쓰는 변경비(변희봉)역이나, 이름은 장미지만 전혀 장미스럽지 않은, 상 담배를 입에 물고 세상을 심드렁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현남의 친구 뚱녀(고수희)의 설정은?자본주의 체제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의 일상을 세심하게 추출했다는 점에서 감독의 또 다른 성과로 보인다.

봉준호 감독의 공간 집중력은 탁월하기로 이미 알려져 있다. `괴물`에서 한강, `살인의 추억`의 도시와 농촌의 경계지점에 있는 소읍.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고층 복도식 아파트가 주요한 상징이 된다.

이 영화는 개인의 이중성이나 숨겨진 일상 속의 일상적이지 않은 면모를 폭로하는 영화인 것 같지만, 실은 다양한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판박이처럼 평범한 삶?을 보장해주는 공간으로 알려진 복도식 고층 아파트, 지극히 한국적이고 소시민적인 그 공간에 대한봉준호식 해부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복도식 고층 아파트는 중산층으로 편입하려고 꿈꾸지만 아직은 중산층이 아닌 소시민 계층과 거기에 빌붙어 생계를 이어가는 아파트 직원들 간의 미묘한 계층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이자, 교수가 되려는 사람과 손수 보신탕을 끓여먹는 토속적인 인간과 애완견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독거노인과 텔레비전에 출연하고픈 소망을 지닌 사람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

감독은 그 공간을 근대적인 것들과 포스트 모던한 것들이 한꺼번에 공존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축소판이라고 느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