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어느 날, 형사가 깡패가 되어 강원도 주문진에 나타난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승진을 코앞에 두고 정직을 먹은 악질형사 해식. 동생의 유골을 들고 고향인 주문진으로 내려간 해식은 그를 쌍둥이 동생 해철로 오해하는 깡패들을 만난다.

그리고 원치 않게 그들 사이의 이권다툼에 말려든다. 한때 같은 패거리이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 원수들처럼 싸우는 것일까? 죽은 동생 해철은 대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해식은 점점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지고, 그들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다. 해식은 잘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사건을 하나 건질 것만 같다.

그는 해철임을 부정하지 않고 번개 패거리와 어울리기 시작한다. 한물간 깡패 번개는 그런 해식을 해철로 오해하며 끔찍히 챙기고 보살핀다. 그 과정에서 해식은 동생의 과거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주조를 이루는 색깔은 붉은 빛과 검은 빛, 흰 빛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붉은 색이 있다. 피로 상징되는 붉은 색은 죽음과 분리를 의미한다. 쌍둥이는 분리되고, 피를 나눈 형제(쌍둥이 박신양)와 마음을 나눈 형제(안성기)는 죽음을 맞이 한다.

검은색은 등장 인물들의 의상으로 나타나는데, 번개패와 해식의 암울한 미래를 의미한다. 그리고 흰 색, 안식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 색은 번개가 죽음을 맞이하는 눈이다. `킬리만자로`의 최고봉에 있는 만년설을 대신한다.

박신양은 연기력에 비해 과대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노력의 흔적이 역력해 섣불리 연기 못하는 배우라고 말하기 꺼려진다. 대사는 절제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느끼는 비애감과 분노를 과잉해 보여준다.

물론 과잉된 연기는 결코 좋은 연기라고 말할 수 없지만 `폼`잡는 영화에서는 필요악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성기가 힘을 조절하는 능력을 터득한 탓이 박신양의 과잉 이미지는 안성기의 억제하는 이미지에 의해 조절된다.

이 영화로 대종상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정은표는 작은 체구에서 발하는 깡다구 있는 연기로 주목을 끈다. 첫 감독작으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낸 오승욱 감독에게는 차기작을 충분히 기대해 봄직하다.

깡패 영화의 틀 안에 자학과 회한, 방황과 속죄의 몸짓들로 꽉 채워놓은 울림이 깊은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비극적 결말이 인상적이다.

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에 대해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한 관객의 감상을 꼽는다. 그는 “힘들었을 때 영화를 보고, 나 혼자만 이 세상에서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삶의 희망마저 등을 돌린 막판 인생들이 수두룩하게 몰려나와 피바다를 뒹구는 이 우울한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소통으로서의 영화 `킬리만자로`는 이미 충분히 구원받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