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는 공장을 다시 열지도 조선소 일을 제공하지도 조합과 여러분을 돕지는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 육체노동자는 대우를 받지 못 해요. 경제의 국경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머리 근육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학교로 돌아가서 새 기술을 익혀야 해요. 이것은 약속드리죠. 전 여러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평생교육을 위해 투쟁할 겁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요.”

1999년에 개봉된 영화 `프라이머리 칼라스`(primary collors)에 나오는 대사다. 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어 실의에 빠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극중 대선후보인 주인공 잭 스탠튼이 연설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획기적인 일을 하겠다고, 정치가가 진실을 말하는.

참가자들 대개는 정치가에 대한 불신, 현실에 대한 무력감, 실직에 대한 분노로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을텐데 그는 과연 어떤 진실을 말할 것이며, 무슨 약속을 해 줄 수 있을까? 뒷 장면이 절로 궁금해지는 가운데 그는 뜻밖의 말을 쏟아낸 것이다.

사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존 트라볼타가 이 영화의 모티브인 클린턴을 매우 잘 연기했다는 소소한 즐거움을 제외하고는 크게 기억에 남을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연설 장면 때문이다. 정치지도자의 필요와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로 그 장면.

잭 스탠튼의 말처럼 정치가는 닫힌 조선소 공장을 당장 다시 열거나, 잃어버린 일자리를 되찾아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해 주겠다고 주장했더라면 그의 연설은 그저 그런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을 뿐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식산업사회로의 이동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초래할 변화를 직시하도록 설득하고, 새로운 투자와 교육을 통해 육체노동자들에게 재교육과 평생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비전을 제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열광적인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영화 속 이야기니까 그 이후의 결과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난국을 헤쳐나갈 분명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영화에서와 같이 실직자들이 크게 증가하여 실업자수가 1백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실직률이 남성에 비해 3배~5배 정도 웃돌아 현재의 경제위기는 곧 여성의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우선 배제시키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성을 `가계 보조자`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오랜 차별의식이 노동시장에서도 고스란히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전일제 취업이 어려운 주부 등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단시간 근로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반갑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7월 여성주간을 앞두고 우울한 통계를 접하며 잭 스탠튼의 연설을 떠올렸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영화에서 노동자들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탄탄한 비전이 지금 우리 여성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위기를 불안이 아닌 새로운 도약과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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