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 현대문학 2004년 9월호

시의 첫 행에서 보듯 시인은 호수와 오리를 보고 있는 제3의 화자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시가 진행되면서 그 시적 화자는 오리와 동일 인물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래서 이 시의 실제적 화자는 오리다. 이 오리의 상대는 그가 머물고 살았던 호수다. 오리와 호수, 이 둘의 상관관계는 가학(加虐)과 피학(被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오리인 `내`가 호수에 머물며 사는 동안 호수인 `너`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끝내 그 호수를 떠나게 되었다는 게 시 `오리`의 전체 내용이다. `너`라는 처소에 머물다 떠나버린 `내`가 그 때 너와 나의 어긋난 관계에 대한 회억(回憶), 여기에는 지난 삶의 행위에 대한 시적 화자의 후회와 반성의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 작품에서도 이윤학 시인의 시적 특장인 진정성과 묘사의 시작 태도가 두드러진다. 시인은 섣불리 독자에게 무얼 전달하려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객관적으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그려낸 풍경 위에 시인 자신의 솔직한 삶을 가만히 얹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풍경의 내면화다. 당신의 넓은 마음에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와 “내 날개는/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라는 시인의 금이 간 내면의 저 말이 가슴 아프게 한다. 호수를 떠난 오리의 몸에는 호수의 물결이, 호수에는 헤엄쳐 다니던 오리의 몸짓이 오래 남아 아프게 할 것이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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