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저녁은 이미 가을입니다. 저 고요한 세상 속에 참 많은 일들이 다녀갑니다. 누군가 살다 지는 곁에서 누군가 부지런히 피어나며 그렇게 제각각 정성들여 삶을 굴리느라 묵묵합니다. 가장 사소한 것으로 스며들기 위해 생이 저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복숭아나무가 올해도 복숭아를 보냈습니다. 둥글게 잘 익은 계절이 바구니 속에 담겨 왔네요. 복숭아나무 한 그루 얻어다가 나무 농장 귀퉁이에 구덩이를 파고 꼭꼭 밟아 심으시던 오래 전 아버지도 따라 왔습니다. 봄 마다 피던 복사꽃도 따라 왔습니다. 굵고 탐스러운 것만을 골라 혹여 짓무를 새라 사이사이에 덧댄 정성이 받아 든 마음을 평평하게, 고르게 다스립니다. 복숭아 하나가 참 많은 것의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8.24
게재일 2009-08-25
댓글 0
-
집을 떠나온 지 아흐레째,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 호를 타고 울릉도로 가고 있습니다. 물결에 조금씩 기우뚱거리는 책상에 앉아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스탠드 불빛 아래 작은 시간은 자정을 조금 지나고 있네요. 오후 10시25분 마산 항을 출발, 오색 불빛 찬란한 마창대교 아래를 유유히 지나 두 시간 남짓 만에 멀리 부산 동두말등대를 만났습니다. 바다에서 보는 부산의 밤 풍경에 괜스레 마음 벅차고 물결에 환하게 길을 낸 달이 너무나 고운 탓에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의 고단함이 스르르 지워지네요. 그간의 일정을 돌아보니 참 다난했습니다. 1박이 예정되었던 백령도에선 다행히 해병대 극기 훈련은 마쳤지만 태풍의 기운이 몰고 오는 파고 때문에 장병들과의 시간을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8.17
게재일 2009-08-18
댓글 0
-
비닐 지퍼 백에 하나 둘 물건을 담아 큰 가방에 담습니다. 최대한 가벼운 옷들과 편안한 신발, 모자와 비옷, 영양제와 비상약을 챙기고 수첩과 녹음기 그리고 카메라와 충전기는 노트북과 함께 넣구요. 깊은 밤 군함 침대에 엎드려 누군가에게 쓸 엽서 몇 장과 우표, 간간이 읽을 작은 글씨의 단행본도 두어 권가지 챙기고 나니 짐은 어느새 산더미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멀미약이 빠졌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왜 이리도 설레는지요. 오늘밤은 아마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104명의 대학생들과 보름 남짓 함께 할 해양영토대장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육로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내 나라의 흙내를 맡는 행사는 많았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8.10
게재일 2009-08-11
댓글 0
-
팔월 첫 토요일 오후, 구룡포청소년수련원에는 경상북도 지역의 여고생 100여 명이 모였는데요. 바로 차세대 여성 리더를 위한 `2009 BPW 리더십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랍니다. 사단법인 전문직여성 한국연맹 포항, 구미, 영천클럽에서 주관한 이 행사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 특히 여고생들에게 다양한 직업에 대한 모색의 기회와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의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하는 자리였지요. 정치, 경제, 경영, 금융, 사회복지, 언론, 의료, 교육 등 참여한 패널들의 분야가 무척 다양했는데요. 저는 문화예술 쪽을 시안갤러리 큐레이터 한지혜씨와 맡았답니다. 강의실 책상을 붙이고 둥글게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보았지요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8.03
게재일 2009-08-04
댓글 0
-
철벅이며 파도가 밀려오고 시원한 바람이 노니는 한 여름 밤하늘로 쏘아올린 불꽃이 도시의 어둠을 지우며 참으로 근사하게 피어납니다. 그 작고 빛나는 수 천 수만의 조각들이 쏟아져 내릴 때 바라보는 사람들 일렁이는 함성이 온 세상 가득 차오릅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벅차고 감사한 것인가 모두가 절로 두 손 모으는 시간은 금세 눈부신 꽃밭이 되고 맙니다. 한 손으론 목말 탄 아이를 한 손은 아내 손을 꼭 잡은 젊은 아빠와 돗자리를 깔고 서로 기대앉은 노부부를 지나 어깨를 감싸고 꼭 붙어 선 청춘의 싱그러움이 함께 하네요. 사내 아이 대여섯 파도 가까이 달려가면 그때마다 모래밭은 움푹움푹 음표를 만들고 분주해진 상가의 네온 또한 그 빛을 더하는 것을 그대도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7.27
게재일 2009-07-28
댓글 0
-
마당 수돗가에 앉아 분홍자물쇠로 꾹 잠근 문을 봅니다. 벚꽃이 훌훌 날릴 때 저 문을 나선 당신은 부용화 큰 얼굴로 피고 모감주나무 씨앗 여무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네요. 마당가 채송화는 식구를 늘려 저리 오순도순 피었는데 지난겨울 내내 경로당 앞에 세워졌던 낡은 유모차도 안보이네요. 강사리 앞바다 미역돌에 너불너불 미역 자라면 새벽같이 쫒아나가 팔순에도 깊은 자무질 하고 봄 햇살 짧다 짧다 부지런히 미역을 다듬어 널던 할머니.큰 덩치에 큰 목청 장부 같아도 비오는 날 놀러가서 옛이야기 해 달라 보채면 부처처럼 앉아 시작했던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흐르고 흘러 결국은 흠씬 눈물 쏟고야 마는 아픔 많은 당신이셨지요. “내가 이래봬도 대보부텀 강사꺼정 다 디비도 따라 올 년 없는 최고 해녀 였다. 저 바다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7.20
게재일 2009-07-21
댓글 0
-
우기 중인 포구가 눅눅합니다. 다행히도 지난밤엔 바람이 크지 않아 오늘 아침 배들은 제법 많은 청어를 풀었지요. 비닐 옷에 장화를 신은 사내들이 터질 듯 한 뜰채를 힘껏 올려 청어를 쏟으면 한가득 싣고 떠나는 트럭과 중매인들 오토바이 소리로 한동안 판장이 북적였구요. 젖은 배 위에서 밥을 지어 둘러앉은 아침식사 위로 한두 방울 또 비가 다녀가네요. 서둘러 식사를 마친 그대는 끼걱끼걱 흔들리는 뱃머리에 걸터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태우며 먼 곳 바라보았지요. 온통 펄럭이는 오후였던가요? 후둑거리며 굵은 빗방울이 사선으로 칠 때 수협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비스듬히 기댄 채 어디론가 안부 전하는 당신을 본 적 있어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7.13
게재일 2009-07-14
댓글 0
-
그대에게 그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말았지요. 쉬이 사과도 못하고 근심만 돌돌 굴리다가 도무지 꼼수로는 헤어날 길 없어 종일 바느질을 했네요. 입 꼭 다물고 돋보기 끼고 뚫어져라 한 곳만을 바라보며 왼손으론 천을 잡고 오른손으론 바늘을 잡고 한 땀 한 땀 넣었다 빼고 다시 뒤로 찔러 앞으로 빼는 동안 촘촘하게 길을 내는 실의 자국들. 그렇게 커다란 방석 하나를 만들어 갑니다. 도톰하게 속을 채운 뒤 먹물 염색한 천을 테두리에 두르고 쪽물 염색한 천을 가운데 대고 붉은 실로 한 바퀴 흰 실로 한 바퀴 그렇게 깁습니다. 행여 앉는 자리 속이 밀릴까봐 곱하기 모양으로 다시 또 길을 내고 그것도 모자라 돌려가며 네모를 자꾸 그립니다. 한 줄로는 모자라 또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7.06
게재일 2009-07-07
댓글 0
-
봄이는 화실로 출근합니다. 짤막한 다리로 힘겹게 3층 계단 끙끙 올라 그림 그리는 엄마 곁에서 납작한 코, 동그란 눈으로 종일 맴돌지요. 음악을 들으며 콜콜 잠을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간식 생각이 나면 킁킁 조르기도 하고 위층 체육관에서 아이들 포도 알처럼 쏟아지면 유리문 앞으로 가서 물끄러미 내다보기도 합니다. 봄아~ 지나는 길에 문 밀고 들어서면 어찌나 반가워하는지요. 겅중겅중 뛰고 뱅뱅 돌고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눈빛을 줍니다. 짱이는 회사에 출근합니다. 큰딸이 낳은 아이를 봐주느라 아내가 서울로 간 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을 짱이가 걱정되어 데리고 출근하는 아빠, 간식과 사료 그리고 담요까지 꼼꼼하게 챙긴 배낭 속 빵빵 합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6.30
게재일 2009-06-3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