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화제를 남기면서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 얼마전 최종 우승자를 가려내면서 성황리에 끝났다. “10년 만에 국민예능의 탄생”이라는 자찬의 말에서 보듯 그것은 ‘국민적’ 수준의 흥행이었고, 특히나 이 경연에서 두드러진 영남출신 참가자들의 약진은 코로나19의 최대 감염지역으로 고통받고 지쳐가는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그나마 흥겨운 시간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듯 새롭게 복권된 대중음악 장르와 취향 뒤에 깔린 사회적 배경도 흥미롭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국민적 ‘문화’와 그에 의한 대중적 취향, 감성의
우리들 한 명 한 명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기 자신이다. 우리의 사고는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이며 우리의 행위는 자신의 감정과 이해관계에 지배된다. 그런 연유로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와 이익에는 열렬하고 예민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줄 결과에는 무심하기 마련이다. 이런 양상은 자신이 속하거나 분류되는 집단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데, 흔히 사람들은 자신을 특정집단의 일원으로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일에 격분하지만 타인을 특정집단의 일원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에는 스스럼이 없다. 이렇듯 자기와 타인에 대해 인
요즘 보수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다가오는 총선에 대비하여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더불어 그 주요 정치적 기반인 영남지역 전체도 술렁이고 있다. 과연 새로운 보수, 보수의 혁신은 준비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수사일뿐인가?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겠지만 유승민 의원 등에 의해 진행되어온 바른 정당계열의 흐름이 독자적인 가치와 지지세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다시 전통적 보수에 해당하는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필자 개인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어쩌면 한국 정치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근대화가 한참 진행된 후에도 여전히 긍정적 의미를 가져왔던 인정(人情)이나 의리(義理)와 같은 말이 언제부턴가 ‘합리적’이라는 말에 의해 대체되어왔다. 말 자체로 보자면 ‘합리적(合理的)’이라는 수식어는 이치에 맞는, 그에 합당하고 부합하는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에 대한 영어의 대응어인 rational이라는 말에는 이성(理性, reason)에 부합하는, 즉 어디에서나 옳고 현실에 부합하는 규범과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가 쓰는 ‘합리적’이라는 말에는 우리 본래의 것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