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경북 일부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3월의 중반이 지나갔다. 우리를 조이던 긴장의 끈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풀 꺾인 확진자 수에 잠시 안도하다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망과 불안은 다시금 우리의 덜미를 잡아챈다. 우울이 과거에 대한 반추와 관련되어 있다면 불안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이 부정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주의적 시각일 수 있다는 역설을 가진 것처럼, 불안은 오늘을 감내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하는 추동력
한국인에게 종종 쏟아지는 ‘냄비’라는 비난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차가워진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전체를 뒤흔드는 외부 세계의 위기와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위기가 한풀 가라앉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을 일구는 우리만의 강인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올해 설 명절을 전후로 시작된 코로나19의 위기는 하루가 지날수록 급박해진다. 잠시 진정되었나 싶었더니 대구와 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확산되었고, 이제 대구 경북지역은 코로나19 폭풍의 핵이 되어 일부 병원과
앞선 글에서, 우리는 수우족의 관대함, 유록족의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이한 미덕의 저변에는 각기 다른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것이었다. 가령 버팔로 떼나 적이 나타나면 그들은 서둘러 이동해야 했고, 그 때 마침 누군가가 산통 중이었다면 그 여성은 홀로 남아 아이를 출산하고는 서둘러 부족을 뒤따라가야 했다. 반면, 연어잡이 유록족에게 있어 가장 큰 불안은 연어 떼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연어가 회귀하기까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던 유록족은 그들의 일상을
교육 특구를 자처하는 대구 수성구의 범어동 거리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표식들이 있다. 평범한 건물의 소박한 간판 뒤에 월급쟁이 부모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고액의 개인 과외와 소그룹 과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늦은 밤,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정시 확대 결정은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 두려는 아이들까지 속출시키면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게 보인다. 종일 무기력하게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해질녘 학원가를 향할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원주민 부족